당신에게 난 중요한 존재는 아닐 거야
우리동네 나의손주
"우리가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미자가 물었다. 은진은 '올해 말까지는...'라고 대답하려다 말을 흐렸다. 미자는 은진의 망설임을 읽었고 더는 묻지 않았다.
미세먼지와 심한 일교차를 이기지 못해 한동안 앓다가 오랜만에 은진과 동네손주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미자의 귓가에 은진의 말이 맴돌았다.
"감기만 나으시면, 애들이랑 좋은 데 구경 가야 해요. 빨리 나으세요, 빨리빨리!"
외출준비를 하는 미자의 마음에 봄바람이 불었다. 미자는 시장에서 새로 산 빨간 점퍼를 꺼내 입었다. 빨간 점퍼에서 반사되는 분홍빛에 미자 얼굴이 꽃분홍이 되었다.
아이들과 은진은 미자의 빨간 점퍼에 연신 찬사를 보냈다. 넉살 좋은 서희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할머니, 아가씨 같아요!" 했다. 미자는 쑥스러워 발그레 웃었다. 은진은 오늘의 미자가 참 곱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은진과 미자는 옆 마을 카페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미자와 함께 가겠다며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서 고르고 고른 곳이었고 미자의 집에서 차로 꽤 가야 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휴대폰을 봤다.
미자는 버스로는 닿을 수 없는 굽이굽이 꽃길과 나뭇길을 구경하며 마음이 부풀었다. 미자에게 꽤 오랜만에 주어지는 드라이브였다.
미자는 은진에게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은진은 '올해 말까지는...'라고 대답하려다 말을 흐렸다. 미자는 은진의 망설임을 읽었고 더는 묻지 않았다.
은진은 마무리에 서툴었던 은진을 떠올렸다. 야간학교에서 1년 동안 할머니들께 한글을 가르쳐드리다가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은진은 마지막 날까지도 "오늘이 마지막 수업입니다."라는 말을 뱉지 못해 여느 수업 때처럼 마무리했다. 할머니 학생들은 "선생님, 다음 주에 또 봬요!" 하며 두 손을 흔들었다. 은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은진은 끝인사도 건네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기 위해 은진의 한글 수업이 그들에게 별 거 아니었기를, 애초에 은진이란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별 거 아니었기를 바랐다. 그들은 새로 들어온 선생님과 새 수업을 하며 나란 사람은 일주일이면 기억도 안 날 것이라 생각했다.
희분홍 봄꽃과 연둣빛 새순이 흐드러진 작은 길을 달리며 은진은 생각했다.
'미자에게 난 중요한 존재는 아닐 거야.'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를 주기적으로 찾아뵙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