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이고 까이다 보면 별 일이란 게 일어남
우리동네 나의손주
-은진선생님은 내가 은진선생님 제안 거절했을 때 속상하지 않았어? 나는 거절당할까 봐 새로운 의견을 잘 못 내는 데 은진샘은 안 그런 것 같아.
-많이 까여봐서 그런 것 같아요.
-은진샘이?
연구학교 공개수업 회의 때 공개 수업 학교 밖에 나가서 해도 되냐고 질문했다. 부장님께서 그건 좀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부장님은 나보다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하시니 부장님께서 거절한 이유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학사도, 학부모도 오는 공개수업에서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한 마디로 무리수니까. 그러나 무리수는 대게 재밌으니 내 아이디어를 잘만 설명한다면 부장님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회의가 끝나고 아이디어를 한 번만 더 설명해도 될지 여쭤봤다. 부장님은 수락하셨고, 앉은자리에서 나의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셨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연구학교 공개수업으로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아이들의 미술작품과 간식선물로 꾸미는 '버스 정류장 전시회' 활동을 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도 않으니 자랑하자면 나 스스로도 "지져스 크라이스트 멋있네."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수업이었고, 아이들에게 나타난 교육 효과도 컸고, 학부모님들 반응도 좋았고, 장학사님이 "이런 수업은 평생 처음 봤어요."라고 칭찬해 주셨다. 건방지지만 칭찬받을 거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나 멋진 수업이라면 남의 눈에도 멋져 보일 수밖에!
부장님은 수업이 끝난 후 내게 질문을 하셨다.
-은진선생님은 내가 은진선생님 제안 거절했을 때 속상하지 않았어? 나는 거절당할까 봐 새로운 의견을 잘 못 내는 데 은진샘은 안 그런 것 같아.
-많이 까여봐서 그런 것 같아요.
-은진샘이?
살면서 까일 일을 많이 벌였다. 요가 자격증을 따고 요가 클래스를 열어 3000원씩 받아 기부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90명이 넘는 독서모임 단톡방에 홍보글을 올렸다. 그리고 1명이 참여했다. 89명에게 까인 것이다. 창피했다. 창피함을 잊으려고 롤을 하고, 머리서기를 했다. 창피함은 나를 잡아먹거나 목을 조르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가슴이 조금 두근거릴 뿐. 그렇게 창피함에게 해침 당하지 않고 별일 없이 넘어갔다.
창피함에 죽지 않은 요가 정신은 꾸준히 요가 클래스를 열었고 요가 클래스의 힐링 파워를 확인한 후엔 인근 상인들에게 홍보하기 이른다. 파리바게트에서 마늘빵을 사며 여쭸다.
"사장님, 저 건너편 스튜디오에서 수요일 저녁 7시에 요가 교실을 열어요. 몸 풀러 오실래요?"
"너무 좋다, 가고 싶어요."
하고 사장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튜디오 문 앞에 전단지를 붙여 놓았지만(허락받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파리바게트 사장님을 포함하여 골목을 다니는 불특정 다수 수백 명에게 까인 것이다. 그럼에도 요가교실은 죽지 않았고, 무릎이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운영되었다. 3000원씩 받아 족히 이십오만 원은 기부했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글쓰기 숙제를 내고 안 하면 벌금 10000원을 기부하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했을 때도 의욕적으로 홍보했다. 그래서 만인들에게 까였다. 무수한 별처럼 까이는 와중에 20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1년을 함께 했고, 수십만 원을 기부했다.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는 나의 홍보글과 전단지와 요가교실과 글쓰기모임을 신나게 깠을 것이다. 나는 안 해도 되는 일을 벌이면서 누군가에게 맥주 안주 노가리처럼 신나게 씹히고 즐기고 맛 보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까임은 내게 들리지 않았고, 내가 만난 건 요가교실에서 힐링해 버린 사람들의 표정, 글쓰기 모임에서 나눈 별 같은 글, 칭찬과 자부심 같은 것들이었다.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손주처럼 찾아뵙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실천하기까지도 많이 까였다. 우선 처음 계획을 기안했을 때 교장선생님이 '동네손주'라는 단어 자체가 별로라고 까셨다.
"동네손주라는 단어 자체가... 별로잖아? 이름을 다른 걸로 지어보는 거 어때? "
나는 '동네손주' 이름이 아니면 싫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맑은 눈의 광인처럼 눈을 뜨고 은은한 미소만 지었다.
협조공문을 띄워 면사무소에서 보내준 독거 할머니 연락처로 연락을 돌릴 때, 10분 중 8분에게 신나게 까였다. 집이 빌라라 복도 시끄러워서, 65살 넘으니 만사가 귀찮아서, 부담스러워서, 그걸 왜 나한테 해주려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까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까일 때랑 일대일 통화로 까일 때랑은 타격이 달랐다. 멘털이 까이고 까이고 까여 일그러지고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미자가 응답했다.
"나에게 찾아와 준다면, 나는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그 순간 또 생각했다.
까이고 까이다 보면 별 일이라는 게 일어난다니까.
*초등학교에서 동네손주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자는 저희가 찾아뵙는 할머니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