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연중행사에 대해 회의하는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의멍을 때렸다. 일종의 명상이었다.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는 어느 정도 규모로 하는 게 좋을까요?"
교무부장님이 교장선생님께 여쭤보셨다.
"아이들 한 포기, 교직원분들 한 포기 정도 돌아가게 하죠.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김은진 선생님, "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장 행사에 내 이름이 왜 나오지?
"김은진 선생님 동네손주 할머니도 두어 포기 챙겨드리고. 그럼 총 몇 포기 정도 될까요?"
관리자분들의 결재와 허가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이기에 원래 함께 하는 게 맞지만, 그 순간에는 교장선생님이 동네손주 활동을 함께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지금껏 경험해 왔듯 봉사활동엔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마음이 무척이나 포근해져서 흐뭇하게 마저 회의멍을 때렸다.
"여보, 어버이날이니까 장인어른 뵈야지. 약속 잡아보자. 우리 집은 조카들이랑 어린이날 어버이날 기념으로 슈퍼마리오 보러 갈까?"
"좋아유~ 아빠테 물어볼게."
"어버이날인데 동네손주 할머니도 찾아뵐 거지?"
"그래... 야지?"
인생이 멍 때리기라 4월이 가고 나면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스승의 날도 나타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는데 신랑이 동네손주 할머니를 챙긴다. 5월 첫 주에 6시 내 고향 촬영, 운동회 연습, 아버지 초청 수업 등 일정이 너무 많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미자에게 전화를 건다.
"이모님(여사님 호칭은 부담스럽다고 하셔서 이모님으로 합의를 봤다), 목요일에 뭐 하세요?"
"할 거 없어요."
"아이들 데리고 찾아뵈러 가도 되나요?"
"나야 고맙죠."
"얘들아, 목요일 어버이날 기념으로 동네손주 할머니 선물 사서 할머니네 놀러 갈 거야."
"좋아요!!!"
아이들 눈이 반짝한다. 신랑이 챙겨줘서 부랴부랴 잡은 일정인데, 일정을 잡고 보니 어버이날이 오기 전에 미자를 뵐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사람 속상해지는 기념일들은 미리미리 예방약을 발라놔야지! 몰랐는데 동네손주 활동엔 신랑도 함께였나 보다.
김장 두어 포기 챙겨주시는 교장선생님도 함께, "잘 뵙고 왔어~?" 살갑게 물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교감선생님도 함께, 아이들과 할머니 사진 학급밴드에 올리면 멋지다고 댓글 달아주시는 학부모님들도 함께, 어버이날이니까 뵈러 가라고 일정 챙겨주는 신랑도 함께, 당신들과 함께 동네손주는 오늘도 순항 중입니다!
덧. 브런치로 응원의 좋아요와 댓글 보내주시는 독자분들도 함께!
*초등학교 학생자치 프로그램으로 혼자 사는 할머니를 주기적으로 찾아뵙는 동네손주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