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우리동네 나의손주
할머니, 안녕하세요. 동네손주 태리예요. 아침부터 여러 번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셔서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또 쓰러지신 거 아니야." 하면서요. 선생님이 여러 번 전화를 걸면서 표정이 어두워지시니 저도 할머니 걱정이 되었어요.
다행히 할머니는 휴대폰을 집에 놓고 밭에 나가 계셨죠. 점심 즈음에야 겨우 전화를 받으셨고요. 선생님은 사람 걱정되게 왜 전화를 안 받으시냐고 할머니에게 역성을 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어요. 그런 걸 안도감이라고 하는 거겠죠.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폭우 소식에 바삐 텃밭일을 하느라 우리를 만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출장도 달아놓고 품의도 올려놨으니 계획대로 어버이날 기념 선물을 사서 할머니 집 앞에 놓자고 하셨어요. 저는 신이 났어요. 공부 안 하고 나갈 수 있으니까요.
선물 사러 가는 차 안에서 가수 아이브 신곡 'I am'을 틀고 노래를 불렀어요. 누가 누가 고음을 잘 내나 내기라도 하듯이 선생님도 서희도 수환이도 깍깍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너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칵칵 웃었어요. 우리 중에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선생님 같아요.
할머니 선물 사러 다이소에 갔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1인당 15000원씩 할머니 선물 골라보자. 할머니에 대해 떠올려봐. 할머니 얼굴, 손, 일상, 집. 우리가 아는 할머니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뭘 사드려야 좋을지 느낌이 올 거야. 너네 갖고 싶은 거도 5000원어치씩 골라, 사준다."
저는 할머니의 화장대부터 떠올렸어요. 자그마한 정리함이 있으면 화장대 위에 쌓여있던 약봉지들을 담아놓기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000원짜리 삼단 정리함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할머니 발 시리지 않게 실내화도 골랐어요. 서희랑 수환이랑 같이 골라서 여름용 하나, 겨울용 하나 담았어요. 그리곤 할머니의 식사를 떠올렸어요. 예쁜 쟁반에 밥그릇, 국그릇을 올려서 간단하지만 건강해질 식사를 차려먹는 할머니를 상상했어요. 초록색과 분홍색이 섞인 아기자기한 쟁반과 금테두리가 둘러진 흰색 국그릇과 밥그릇을 골라 담았어요. 물티슈도 사고, 거울도 샀어요.
15000원이 엄청 큰돈 같았는데 하나하나 담다 보니 금방 채웠어요. 제 장바구니가 가득 차니 뿌듯했어요. 수환이랑 서희가 고른 것까지, 모두의 선물을 합치니 꽤 큰 보따리가 되었어요. 서희랑 둘이 들어도 낑낑할 만큼요. 남은 5000원으로 저는 젤리와 마시멜로우를, 수환이는 보드게임을, 서희는 인형을 샀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선물을 들고 할머니 집에 갔어요. 무거워서 숨이 찼어요. 선물을 내려놓자마자 할머니 집 툇마루에 털썩 걸터앉았어요. 가쁜 숨을 돌리며 산에 걸린 흰 구름을 보았어요. 할머니가 심으셨다는 진분홍과 연분홍의 꽃들도 봤어요. 예뻤어요. 너무 좋아서 선생님께 "시골은 정말 이뻐요. 저도 나중에 시골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선생님도 키우는 레트리버랑 시골에서 사는 게 꿈이래요.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랑 같이 시골에 살고 싶어요.
저희는 툇마루에서 할머니에게 카드를 썼어요. 카드를 쓰면서 할머니가 우리 선물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산 정리함과 거울은 어디에 놓으실까 상상했어요. 상상 속 할머니는 활짝 웃었고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저도 씩 웃었어요.
선물 사이에 카드를 잘 꽂아놓고 기념사진도 찍고 학교로 돌아왔어요. 교무실 냉동실에 어린이날 기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있었어요. '엄마는 외계인' 맛을 먹으며 생각했어요.
오늘 기분 최고 좋다.
할머니 기분도 최고 좋으실거죠?
동네손주 태리올림
*초등학교 학생자치 프로그램으로 혼자 사는 할머니 댁을 손주처럼 찾아뵙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