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한 상상력은 종종 선을 넘죠
우리동네 나의손주
만나기로 했는데, 미자가 전화를 안 받는다. 처음 안 받았을 때는 주무시나 했지만, 두 번째 안 받으셨을 때부터 상상 속 미자는 그간 식사를 게을리했고, 기력을 잃어서,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찬 바닥에 쓰러져 있다. 세 번째 안 받으셨을 때 상상 속 미자는 벌써 응급실에 실려가 이런저런 링거 줄을 매달고 응급처치를 받는 중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시간 속 미자는 비참하고 불쌍하다. 나는 119 버튼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2시간 만에 미자에게 연락이 닿았다.
"아이고, 미안해요. 비가 온다길래 밭에 급하게 나가있느라 휴대폰을 못 챙겨서 나갔지 뭐예요."
미자의 목소리가 크고 활기차고 상기되어 있다.
"어쩜 그리 전화를 안 받으셔서 사람을 걱정시키세요."
나는 투정을 부렸다.
"비가 많이 온다 해서 부랴부랴 나가느라. 걱정 많이 했어요? 미안해요."
밭일을 막 하다 요기라도 하려고 잠시 집에 들른 미자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니 상상 속 미자가 머쓱할 지경이었다.
미자는 내 앞에서 몇 번 울었다. 몇 번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갔었다. 미자와 나의 만남이 긴 선이라면, 미자가 울고, 아프고, 쓰러졌던 사건들이 점처럼 콕콕 있었다. 그리고 나의 미천한 상상력은 미자의 다른 시간까지도 아프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시간으로 상상해 버렸다. 나의 상상력은 상상력이 부족해서 문제다.
누군가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사람이 나머지 시간에조차 그 사건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해 버린다. 슬픈 사건을 만났던 사람들을 슬픈 인생으로 빠르게 결론 내버려야 세상을 이해한다고 착각하고 싶은 내 욕심이 충족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타인의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개미 똥꾸멍 털끝하나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인생에 대해 선 넘는 상상력을 발휘할게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름을 인정하고 부족한 정보로부터 발생하는 공백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드라마 더글로리에는 현남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남편에게 심하게 맞고 사는 여자다. 남편에게 맞고 산다는 정보가 나왔을 때, 나는 현남을 비장하고 어둡고 시든 사람으로 해석했다. 그 사람은 드라마에서 내내 그런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 상상했다.
현남이 동은에게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매 맞고 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내가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걸 아는 당신, 내가 불쌍하고 우울하고 슬프게 살 거라고 상상해 버렸죠? 엿이나 드세요."
나의 미천한 상상력은 명랑한 현남에게 어퍼컷을 맞았다. 인생에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지금 오늘 여기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는 걸 또 까먹고 미천한 상상력으로 현남의 인생을 재단해 버렸다.
미자의 인생에도 슬픈 일이 있었다. 미자는 여전히 삶에 대해 별 의욕이 없다곤 하지만 미자의 시간들은 슬픔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고구마, 파, 마늘, 상추로 텃밭을 가꾸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에 분홍색 꽃을 심어둔다. 마을회관에 나가 언니들과 밥을 나눠먹고, 옆 집 진돗개 밥그릇에 사료도 가득 부어준다. 미자의 오늘은 오늘의 일들로 채워지고 흘러간다.
미천한 상상력으로 타인의 인생에 선 넘는 상상을 해버릴 바에야 분리수거나 똑바로 해야겠다.
*초등학교 학생자치 '동네손주' 프로그램으로 동네 할머니 미자를 주기적으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마치 손주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