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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May 31. 2023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어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이나가키 에미코

 '연습실인 카페에 1시간 반 전에 도착해서 혼자서 묵묵히 최종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집중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매사 이렇게 살았다면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여하튼 그건 그거고, 쳐 보니 제법 상태가 좋다. 속도감도 있다.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다.'

 56살 에미코가 피아노 연습을 하다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다.' 구절에 영감 받아 적어 본다. 이름 하야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다 리스트' 두둥!

  

1. 세상에서 한 줌의 돈을 줍고 퇴근해서는, 세수도 하고, 괄사 마사지도 하고, 폼 롤러로 근막도 풀고, 책도 읽다가, 영감을 받아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갓생인가!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다.

 

2. 학교에서 한 살 어린 동생에게 장난치다가 동생이 에둘러 말하는 거절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울려버린 서희에게 말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해." 내가 들어도 조금 멋있는 멘트! 조금 멋있어버린 나!


3. 주말에 환경생태교육 인터넷 강의 연수를 촬영했다. 커리어우먼처럼 원피스에 구두 신고 꼿꼿하게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며 마을 연계 생태교육과 학생 자치 연계 생태교육 사례를 소개해드렸다. 스태프분들께 말 잘한다고 칭찬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조금 유재석!


4. 가끔 내가 올려놓은 브런치 글을 정독한다. 글이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시원해서 흠칫 흠칫 놀란다. 이 글 쓴 작가 누구야, 내가 보기에도 조금 대단해!


5. 아이들과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아이디어가 좋을까. 타고난 걸까? 노력인 걸까? 내가 보기에도 조금 뒤집진다!


*일본어 번역 책을 읽다 보니 글체가 번역체가 되었다.




 며칠 전에 교무실에서 나와 아이들이 친환경 캠페인을 위해 미리캔버스로 디자인해서 만든 컵을 보고 보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은진샘은 어쩜 이렇게 아이디어가 좋아?"

"천재일까요?"

나는 나의 수업 아이디어 부분은 천재적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멍청한 부분도 많아요."

"멍청한 부분 본 적 없는데?"

"저는 저의 멍청한 부분을 하나하나 목격해서 알아요. 저는 반은 천재고 반은 멍청해요."


 지금보다 어릴 때는 나의 멍청한 부분들이 하나하나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게으르지, 꼼꼼하질 않지, 실수를 하지.' 하는 하나하나의 멍청한 사건 사고들이 모두 자기혐오의 명백한 근거로 쓰였다. 내가 분명 잘하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건 금방 쓱 흘려보내고, 내가 못 한 것만 꽉 붙잡고 매달렸다. 못하는 게 싫으니 어디 가나 거기서 제일 잘해보려고 나댔다. 그래서 피곤했.


 요즘은 '나는 멍청하기도 하고 천재기도 하고, 못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지.'로 퉁치곤 한다. 내가 잘한 부분은 내가 봐도 잘했으니 크게 인정해 두고, 내가 못한 부분은 내가 봐도 못했으니 못했다고 혹은 못 가졌다고 인정해 둔다. 나 스스로 너무 못나다는 생각이 들려하면 멋진 부분을 떠올려 퉁쳐본다. 그리곤 우리 집 개를 껴안고 누워있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하튼 그건 그거고, 내가 보기에도 조금 멋있는 구석이 있으니 퉁치고 걍 살자!'이다.




 오늘은 책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를 가져왔습니다. 퇴사하고 아무 목적 없이 피아노를 치는 삶을 즐기고 있는 할머니의 에세이입니다. 작가님은 '나와 마찬가지로 노후의 모험을 시작하려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라고 하시네요.

맘에 드는 구절 하나 옮겨놓고 이만 줄입니다.


'나아질 수 있없든 그저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시간을 행복이라고 여기게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앞으로의 기나긴 내리막길 인생이 얼마가 지속되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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