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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un 17. 2023

당신의 인생은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정재찬

  당신의 인생을 몇 개의 단어로 설명한다면, 당신은 어떤 단어를 떠올리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 사랑했던 사람, 가진 것, 이룬 것, 이루고자 했던 것... 당신의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저의 인생은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생이라는 게 도통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으니, 만약 저의 인생이 이곳까지였다면 찰나에 버금가는 32년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1. 선생님

      

 직업으로 설명되는 삶은 아니길 바랐는데,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제 직업입니다. 23살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습니다. 먼저 선에 살 생, 먼저 산 사람 ‘선생님’의 호칭으로 불리기에는 좀 어린 나이였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진이 쏙 빠져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며 생각했지요.      


‘내가 이걸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어떨 때는 힘들어서 울고, 어떨 때는 기뻐서 울고, 어떨 때는 마음이 차갑게 굳고, 어떨 때는 사랑으로 넘쳐흘렀지요. 매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결심하며 10년 차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배우면, 언젠가는 확신을 갖고 교육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제, 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교육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새로운 아이, 새로운 상황 앞에서 제 안에서 이렇다 할 해답이 찾아지지 않아 교장, 교감 선생님께 길을 여쭤봤습니다. 관리자분들께선 많은 조언을 내어주셨습니다. 내 안에 없던 조언을 가진,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 그리고 선생님 흉내를 내보고 있는 10년 차의 나였습니다.       


 선생님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 갈수록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인터넷에 보면 경력 10년을 가진 다른 직업의 분들은 자신 있게 자신의 직업이나 커리어에 대해 설명하는데, 교육은 10년을 해도 ‘저는 이 분야 전문가입니다.’라고 내뱉기가 망설여집니다. 매 번, 새로운 아이와 새로운 상황들 속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겨우 종업식을 맞이하곤 하지요.      


 한참을 길이라고 믿은 길을 걷다가, 길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실망했다가, 다시 새 길을 찾기 위해 저린 다리를 옮겨보는 데 금세 길을 잃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길을 잃다가 다시 또 길이라고 믿을 길을 걸어보겠지요.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며 ‘선생’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길  -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 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쓰러진 자의 꿈>(창비, 1993)          




2. 건강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습니다. 여러 부위가 다양하게 시원치 않은데 특히 발목이 제 기능을 잘 못합니다. 20대 후반부터 걸핏하면 아프고 부어올라서 물리치료, 주사치료, 도수치료 안 해본 치료가 없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막막했기에 발목이 조금만 시큰해도 마음이 금세 쪼그라듭니다. ‘내일 아침에 부어오르면 어쩌지?’ 걱정에 잠을 설칩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혹시나 발목이 다칠까 몸을 사립니다. 벨리댄스도 배우고 싶지만 참고, 테니스, 배드민턴 같은 것도 안 하고 꾹 참습니다.  

    

 식사량은 남들 말하는 ‘코딱지’만큼 먹습니다. 한동안 대세던 ‘소식좌’에 해당하지요. 아침 식사로 요구르트 한 병, 체리 10개, 아몬드 한 봉지를 먹고 배불러서 한참을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급식에 나온 반찬이 맛있어서 몇 입 열심히 먹다 보면 배가 불러 밥을 못 먹습니다. 밥을 가득 남길 때 영양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멋쩍어서 씩 웃어봅니다.    

 

 몇 년 전에 위·대장 내시경 찍을 때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워낙 장이 작으니 많이 먹을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위랑 대장도 보통보다 못하는구나.’ 그때 알았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저는 말랐습니다. 말라서 그런지, 허약체질로 태어난 건지 금방 방전이 됩니다. 체력의 임계치가 남들보다 한참 낮아서 별 거 안 해도 금방 맥이 풀리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좁니다. 아이들 지도하고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연수를 듣다가도 꾸벅꾸벅, 심지어는 교장 선생님과 회의하다가도 꾸벅꾸벅 좁니다. 대학 때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 수업에 맨 앞에 앉아서도 턱이 뒤로 넘어가게 졸았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모습을 ‘존다’기보다는 잠시 ‘기절’했거나 ‘전원이 꺼진’ 상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깨어있고 싶은데, 누가 뒤에서 급소라도 탁 친 것처럼 졸기 시작하니까요.   

   

 보통사람들과 다른 무언가는 수많은 오해를 빚어냅니다. 저도 누군가를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하여 오해하며 살아왔겠지요. 보통 사람들보다 특출 나게 약한 저의 발목과 체력과 식사량은 또 누군가에게 좋은 오해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설명할 기회 없이 오해를 받는 것 억울할 때가 있지만, 이제는 그리 생각합니다.


'오해를 피할 길이 있겠는가. 나라도 나를 오해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저의 이 건강하지 못한 몸을 우울에 빗댄다면 퍽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 옮겨 봅니다.     


군집  -  이훤     

세계에 검열당하고

나에게 외면당해

잉태되지 못한 감정들 모여

내밀히 일으키는

데모     


누군가는 그것을 우울이라 불렀다     

이따금 정당하기도 했다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문학의 전당, 2016)     




 저의 인생에 대해 소개하는 단어 몇 개를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2개만 쓰고도 글이 길어졌습니다. 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퍽 많은 가 봅니다. 과유불급이니 제 인생에 대한 글은 이만 줄입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인생이라 부를 만한 단어들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정재찬 작가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인생이라 부를만한 단어, 대주제 7개와 소주제 14개를 다양한 글과 시와 대사에 빗대어 노래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한 명의 삶은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다양한 글과 시와 대사를 통해 당신의 인생에 대해 고요히 생각해 보기 좋을 것 같아 추천합니다.     


 작가님의 프롤로그에서 문장 몇 개 빌려와 적어보며 마무리합니다.     


‘어쩌다 이 길을 가고 있는 겐지 알다가도 모를 운명 속에서 오늘도 웃다가 울다가, 애써 버티다가 허위허위 떠내려가다가, 문득 돌아보니 또 다른 길목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계실 겁니다... 이 책은 인생에 해답을 던져주거나 성공을 기약하거나 나무라거나, 그저 다 옳고 괜찮다는 식의 값싼 동정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시로 듣는 인생론은, 그래서 꽤 좋을 것입니다.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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