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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un 20. 2023

여러분은 스펀지밥

말하기를 말하기 - 김하나

 장도연 씨는 청춘 페스티벌에서 청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은 원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된지라 그래야 할 자리가 있을 때는 긴장을 풀기 위해 이렇게 되뇐다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ㅈ밥이다.




 평소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부분에선 나보다 한수 위겠거니 생각하며 상대방이 가진 스토리를 묻고 듣는다. 경험상 최악의 인간도 어떤 부분에선 배울 점이 있었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인간일지라도 반면교사로서의 효용은 있었다. 마주치는 누군가가 나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은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며 보다 폭넓게 성장하리라 믿는다. 이건 삶에 무척이나 유용한 자세라 생각해서 영영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강연을 앞두고 '모두 다 ㅈ밥이다'라고 되뇌는 장도연 언니처럼 내 앞에 있는 모두를 ㅈ밥까진 아니어도 스펀지밥으로 취급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바로 내가 준비한 콘텐츠를 말할 때이다. 가령 강의를 한다던가, 발표를 한다던가 할 때가 그러하다.


'이 사람들은 다 ㅈ밥 까진 아니고 스펀지밥'

라고 생각해야 안 쫀다. 쫄면 말도 빨라지고, 준비한 말도 뭉텅이로 건너뛰고, 어떨 때는 안 해야 할 말을 주절주절하다 낭패를 본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말해야 할 땐, 청중 모두를 무시하며 안 쫄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하나 작가의 아버지가 딸에게 했던 조언 또한 유용하다.

"하나야, 강연도 다 기싸움이다잉. 강연할 때 자불거나 딴짓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 싸람들이 지금, 어? 내가 을마나 준비를 해가, 열과 성을 다해서 강의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없구로! 학 마! 안 들으면 니 손해지! 이래 생각을 해야 된다잉! 쭈삣거리고 거게 말리들면 안 되는 기라. 알았제?"


 마을 연계 학생자치 수업 사례로 강의를 하러 음성 원남초에 간 날이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내 수업에 대해서 소개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청중 모두를 무시하는 데 실패했고 '여러분이 스펀지밥'이 아니라 '내가 뚱이'가 되었다. 기가 죽기 시작했고, 시선은 허공으로 갈 데 없이 흔들렸고, 말은 끝을 모르고 빨라지다 우원재가 되었다. 1시간 30분 말해야 할 내용은 40분 만에 거덜 나기 직전이 되었고, 이 말 저 말을 덧붙이며 시간을 끌다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날, 청중을 무시하는 데 실패하여 내가 준비한 훌륭한 발표를 해내는 데도 실패했다.


 연구학교 공개수업 중간 발표하는 날, 장학사님도 오시고, 교육정보원장님도 오시고, 이웃학교 선생님들도 오시고, 교장 교감 선생님도 계셨다. 나는 그날 메타버스로 이웃학교와 함께 수업하고 소풍을 떠나는 프로젝트 '메타버스 마을탐사대'에 대해 발표해야 했다. 발표하기 전, '내가 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많이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니 긴장한다 해도 인간미가 있었겠지만, 어쨌건 내 프로젝트는 내가 했고, 이 내용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나는 발표 자료도 잘 만들었고, 발표 연습도 충분히 했다. 그럼 내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스펀지밥으로 봐도 정당방위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장학사님은 네모바지 스펀지밥, 교육정보원장님은 삼각바지 스펀지밥, 컨설팅해 주시는 분은 요가복 스펀지밥.'


 나는 그날 모두를 무시하는 데 성공했고, 준비한 만큼 해낸 내 발표에 만족했다. 내 발표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새로운 기회도 많이 얻게 되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충분히 잘 전달되었음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역시 '여러분은 스펀지밥' 전략을 쓰길 잘했다.


 물론 청중 모두를 무시하여 발표를 성실히 준비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다. 몇 년 전에 유명한 사람 강연한다고 먼 길 찾아갔더니 "아, 오늘은 무슨 얘기해 볼까요." 하길래 열받아서 눈에 띄게 졸아버렸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들으러 온 수 백 명의 시간과 노력을 어찌 그리 깡그리 무시하고 무대에 오를 때까지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발표에 임할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반대로 청중에게 쫄아서 내가 준비한 나만의 발표를 망치는 것 또한 적잖이 아쉬운 일이다.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타인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발표 내용을 다듬고, 발표하는 태도와 목소리와 대사를 연습하고, 모두를 스펀지밥으로 보며 기죽지 않고 잘 전달해 내기! 그것이 말하기에선 참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종합하면, 강연의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 가짐인 것 같다. 물론 강연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잘 준비해 놓고 긴장해서 강연을 망치지 않기 위해 1. 못해도 괜찮다 2. 안 들으면 니 손해(학 마!) 3. 다 ㅈ밥이다 4. 유명인도 아무 말을 한다 등등을 새기며 긴장을 풀어보자.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 92쪽


 당신이 준비한 말을 듣기 위해 얼마든지 스펀지밥이 될 의향이 있는 지니의 글은 이만 마친다.


 덧. 글을 쓰는 것 또한 글자로 말하기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도 당신의 글 안에서만큼은 쫄지 말고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기를!




오늘은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가져왔습니다.

 김하나 작가는 카피라이터 작가시라는 데, 글을 어쩜 이리 잘 쓰시는지 부러울 따름입니다. '말하기를 말하기' 책은 김하나 작가가 다 년간 팟캐스트, 각종 강연과 북토크를 하며 느낀 말하기에 대해 쓴 책입니다. '말하기'에 관심이 없으셔도 문체 자체가 재밌어 누구나 재밌게 읽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말하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개인적으로 말하기에 대해, '어, 음, 예'까지 고민해 보는 작가의 말하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말하기에 대한 여러 시선을 가져와 나의 말하기를 비난해 보았습니다. 아직 한참 멀었더군요. 더 잘 말하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쓰고 말해봐야겠습니다.


뇌리에 박힌 구절 옮기며 책 추천도 이만 마무리합니다.


흔히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상대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으나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야"처럼 건강지상주의로 흐르는 말들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랑을 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노력하고 성취도 이룬다. 따라서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야'라는 말은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송두리째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표현이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이야기였고, 나의 언어 사용에 중요한 업데이트였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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