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버스 정류장은 다정하지 않다. 스마트 알림판은 없고, 벽에 붙은 버스 시간표 글자는 할머니들 눈에 개미 기어가듯 작다. 그나마 정해진 버스 시간을 지켜서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경우도 드물다. 기다리는 버스가 10분 전에 갔는지, 10분 뒤에 올는지 알 길이 없는 할머니들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다가 학교 앞 신호등 빨간 불에 걸려 차를 세웠다. 노래도 부르고, 하늘도 보다가 무심코 돌린 고개 끝에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걸렸다. 안으로 말린 어깨와 한껏 구부러진 허리로 의자에 걸터앉은 몇몇의 할머니들에게 그날 이상하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시골 버스 정류장은 왜 다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운영되는 버스도 수지타산은 버리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운영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고 오랜 기다림을 견디는 나이 든 사람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긴 영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날 아이들에게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누군가를 잠시나마 기쁘게 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꼬물꼬물 만든 아이클레이 작품, 일본 만화 풍의 얼굴과 졸라맨 풍의 몸통이 어지럽게 뒤섞인 그림 작품 같은 게 어쩌면 버스 정류장을 보다 더 다정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고, 눈과 함께 입을 즐겁게 해 드릴 간식을 토끼 모양 봉투에 담았다. 박스 가득 작품과 간식을 담아 버스 정류장에 걸어가면서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버스 정류장을 다정하게 꾸밀 생각에 벌써부터 한껏 다정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허리가 아파 어디 갈 수는 없고 답답해서 사람 구경이나 하려고 정류장에 앉아계신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바리바리 싸 온 간식을 하나 드렸고, 정류장을 미술 작품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솜털로 만든 빨간 꽃을 유리창에 붙이고, 수직과 직선 수업시간에 만든 몬드리안 패러디 작품도 붙이고, 우리 마을에 살지도 모를 외국인을 위한 정류장 전시회 안내문도 붙였다. 할머니는 간식을 손에 꼭 쥐고 소란을 일으키는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다정한 눈빛과 표정을 보내셨다. 그러다 이따금씩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아이들도 다정한 얼굴로 웃었다.
버스 정류장을 꾸미다 버스 한 대가 왔다. 주희가 얼른 간식 서너 봉지를 챙기더니 버스에 올라타 기사님께 쥐어드렸다.
"기사님, 요거 선물이에요!"
기사님은 활짝 웃으며 선물을 받아드셨고, 주희도 활짝 웃었다. 나는 연거푸 박수를 치며 "센스 미쳤어!"라고 했다.
버스 정류장은 금세 아이들 작품과 간식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버스 정류장 전시회가 열리는 며칠 동안은 할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덜 심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골의 한 버스정류장은 아이들의 손길을 받음에 따라 조금 더 다정한 버스 정류장이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