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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Nov 09. 2023

꾸준히 의젓한 아버지와 그렇지 못한 딸

  어제는 청주에서 저녁 일정이 있어서 퇴근하고 한 시간 이십 분을 운전해서 청주에 갔습니다. 청주 일정을 마치고 밤 9시쯤 본가에 가서 "아부지, 잘 있었슈?"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쓰러지듯이 잠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눈 뜨자마자 대충 씻고 아버지가 챙겨준 요구르트랑 초코파이를 들고 부랴부랴 회사로 출발했습니다. 다들 어찌 이리 부지런히 사는지 아침 일곱 시도 전에 출발했는데 청주를 빠져나오는 길이 꽤 막혔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꼬박 달려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저의 생활 패턴을 설명하자면 신랑과의 신혼집은 대전에 있고, 근무지는 충주인데, 본가는 청주인지라 평일은 충주, 주말엔 대전에 체류하며 꽤나 자주 청주에 다녀오고 있습니다. 충주와 대전은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고, 청주와 충주, 청주와 대전은 사이좋게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매 번 충주와 대전을, 가끔 청주도 왔다 갔다 하며 길에서 시간과 체력을 펑펑 쓰고 있지요.


 아침 8시쯤,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아무런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곤하면 머리가 멍하고 도저히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하루종일 '재워줘.', '집에 보내줘.' 하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퇴근하는 길, 무척이나 우울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주말부부 메뚜기 생활, 이 지겨운 장거리 운전과 고갈난 체력으로 애써 버티는 하루하루들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자주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제 본가에 딱 도착하니 밤 9시, 아버지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아침엔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7시에 고속버스를 몰고 대구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대구와 청주와 대구를 왔다 갔다 하고는 대구에서 하룻밤을 주무시는 일정입니다. 20년째 고속버스를 운전하는 아버지는 촉박한 배차 시간 때문에 밥 먹고 양치질할 시간도 없어서 가그린을 사드리곤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운전하고, 타지에서 자고, 식사 시간도 충분치 않고, 가끔 못 배워먹은 놈들이 진상 부려서 속 썩게 하는 운전기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아빠가 너무 힘들다.", "아빠가 한 달만 쉬려 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꾸준히, 주어진 근무 시간을 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식들을 살폈죠. 의젓하게. 저는 서른세 살인데도 "체력 없어.", "힘들어."."쉬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사는 데 아버지는 뭐가 그리 의젓한 걸까요. 어찌 그리 꾸준한 걸까요.


 꾸준히 의젓한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힘든 것도 아니지.' 하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그냥 '아빠는 진짜 대단해. 아, 쉬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랑 저랑은 뭐 다른 사람이니까요. 


  아무튼, 지친 퇴근길 꾸준히 의젓한 아버지를 떠올렸고,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렇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며 힘 같은 게 난 건 아니었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와 일찍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버지의 의젓함을 칭송하며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그리하여 이 글의 결론이 무엇이냐, 교육청은 나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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