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인간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그러니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요가하고 진료 보는 동안도 부지런히 움직이다 퇴근하면 러닝하고 캠핑하더니 집에 가선 글 쓰고 스트레칭하다 잠드는 의사 영상을 보았다. PD는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찍다가 지쳐서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고 의사가 대답했다.
"인간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놀랍게도 요즘은 그 말에 깊이 동감한다. 어떤 계기였을까, 딱 한 지점을 짚어 여기에서부터였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게 리트리버가 덤으로 있었고, 그 리트리버랑 하루에 1시간씩 두 번 산책을 했던 날 저녁에는 다리가 저려 잠을 설쳤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리트리버와 아침 산행을 한다. 어제는 왕복 3시간 걸려서 신성봉 봉우리를 찍었고, 집에서 몇 시간 쉬다가 헬스장에 갔다. 움직이지 않고 네다섯 시간쯤 흐르면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몸의 신호를 느낀다. 움직이고 있을 때 허벅지의 근육도, 발바닥의 감각도,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도 느낄 때 선명히 살아있는 기분이다.
리트리버와 꾸준히 걸어서인지, 필라테스를 해서인지, 달려서인지, 엉덩이 운동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의 나는 부쩍 잘 움직이고 많이 먹는다. 오늘 인바디를 쟀더니 근육이 1kg 늘었고, 지방은 오히려 빠졌다.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는데, 단순히 살이 찐 게 아니라 최고로 좋은 체력이 되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익숙한, 안 움직이는 게 살짝 어색한 내가 교실 속 아이들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복도에서 제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여지없이 뛰고야 마는, 밥은 코딱지만큼 먹어놓고 5분만 시간이 있어도 운동장을 내달리고야 마는, 생명력이 들끓는 아이들이 학교에선 안 걷는다. 아니, 못 걷는다.
40분 동안 수학 문제를 풀고, 10분 쉬고(10분 내에 다음 시간 책을 꺼내놓지 않으면 혼내니까 8분 쉰다고 정정하겠다), 40분 동안 영어 문장을 외우다가 다시 8분 쉰다. 체육은 일주일에 세 번, 그마저도 강당을 쓸 수 있는 시간에야 움직이는 체육을 한다. 점심시간에라도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데 교사들은 망설인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교사 책임으로 몰까봐. 점심시간에도 교실에 앉혀놓는 게 교사가 단명 안하는 지름길이다. 교육과정을 읽으면 아이들에 대한 연민은 더 커진다. 아이들이 마치 몸은 없고 머리만 있는 존재인 것처럼 온통 머리, 머리, 머리로만 배운다. 사실은 머리도 몸인데, 마음도 몸인데.
나는 영어 전담이다. 그래도 한 수업에 한 번은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 영어 교실이 꽤나 넓어서 그마저도 올해만 가능한 일이다. 영어 놀이를 움직이면서 할 수 있게 설계한다든가, 다 팽개치고 신나게 5분 놀 수 있는 교실 놀이를 준비하기도 한다. 내가 몸으로 경험했을 때, 움직이고 나면 더 집중이 되고, 더 창의적이 되는 데다 거짓말처럼 더 잘 외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고생 때 단순 암기를 헬스장 러닝머신 위를 걸으면서 했다.
아이들이 더 많이 걸었으면 좋겠다. 막 뜀박질할 시간이 엄청 많았으면 좋겠다. 숨이 차올라서 헥헥거리고, 덥다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흙바닥에 턱 누워버리는 시간이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낡은 체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동력이 들끓는다. 코딱지만 한 교실에 스무 명 넘게 넣어놓고 끓어오르는 생명력을 참고 참게 하니 얼마나 불쌍하고 안쓰러운가.
'걷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걷는 것이 얼마나 이로운지에 대해, 심지어 학업에 있어서도 걷는 행위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로 설명한다. 움직이는 것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많은 것에 공감하며 읽었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더 커졌다.
아이들이 매일 땀이 뻘뻘 나게 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에서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교과 내용과 연계하여 지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한다. 왜냐하면 교실은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이 움직이기에 너무 작고, 운동장에서 활동하다가 아이가 다치면 내 교직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체육 시간도 아닌데 왜 운동장에서 수업을 했죠? 해명해 보시죠. 김선생님."
"아, 그게... 인간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고.... '걷는다'라는 책을 보니까 걷고 움직여야 학습 능률도 오른다고 해서, 달리기랑 사회 암기를 접목해 보았는데요..."
(전혀 면죄부 안 된다는 눈빛 받음)
"죄송합니다..."
그래서 연민과 동정만 한다. 학교에서 못 움직인 만큼 퇴근하고 나 혼자 움직인다. 인간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으나 아이들은 못 움직인다. 안 걷는다.
오랜만에 책 추천글 가지고 왔습니다. '걷는다'라는 책인데, 교보문고 SAM 구독권을 쓰시면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걷는 것이 왜 이로운지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알려줍니다.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는 중요한 회의는 꼭 걸으면서 한다네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걸을 때 만들어진다고요. 알고 계셨나요?
아이들과 프로젝트학습을 할 때, 유독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할 땐 꼭 걷게 한 뒤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단순암기도 걷기나 움직임으로 스트레스를 발산한 뒤에 하면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제가 몇 번 실험해봤습니다.
저는 교실 속 아이들 명수가 줄어드는 게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요. 교권이라던가, 예산이나 기기지원, 환경 개선 그런 것들 있겠지만 다 제치고 학생 수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부디 아이들이 더 많이 움직이고 걸을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변해가길 바랍니다. 정책도 그런 쪽으로 움직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말이 길어지네요. '걷는다' 책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