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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3. 2022

자급적 삶: 돈벌이 경제에서 살림살이 경제로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힐러리에게 암소를)

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생은 쓰기 위해 벌고, 벌기 위해 쓰다 끝난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보다 잃지 않으려 더 애를 써야하는, 그야말로 돈에 예속된 삶을 살게 된다.


자본의 노예와도 같은 현대적 인간의 생애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기획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과 노동으로 지친 몸을 회복해 다시 일하러 가기 위한 시간으로 구분되는 인생을 워라밸이라 부르는 기만말고,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삶다운 삶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구성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이 자급자족에 있다고 보았다.


지금의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삶의 모든 것을 소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소비를 해야만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를 많이 축적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겨져 돈벌이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우리네 삶의 부속품과도 같았던 돈이 오히려 인간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전도 현상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상품을 사고 쓰고 버리고 사고 쓰고 버리는 소비주의 양식의 삶을 전 세계인이 살게 된다면, 지구의 자원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그 삶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며, 인간의 행복을 잡아먹고, 불평등을 초래한다.




의식주를 소비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면, 의식주를 자급하면 되지 않을까?



부와 물질의 축적이라는 욕심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지은 것들로 간소하게 살아가는 삶이 더 즐거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급자족하는 삶은 자본에 인생을 위탁하지 않아도, 내 손과 능력으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물음과 생각에서 출발해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여러 서적을 찾아보다가,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힐러리에게 암소를" 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376166




이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소위 북반구의 엘리트적 삶의 모습이 좋은 것이고, 힘있는 것이고, 유능한 것이라는 '위로부터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급 관점, 스스로 삶을 생산하고 재생시키며, 자기 힘으로 서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에 따르면 자급적 관점은 자부심, 자기 확신, 위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준다.




선진국의 대다수가 '좋은 삶'을 더 많은 돈과 상품, 사치품을 요구한다고 보며, 소위 말하는 '좋은 삶'을 북반구의 부자 나라와 부자 계급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환상임을 이 책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선진국에서 말하는 '좋은 삶'을 추구할 때 자연, 이민족, 자립과 위엄, 아이들 미래, 인간성의 파괴가 벌어진다. 오히려 여성들이 자급을 해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와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지어나감으로써 자신감과 엄, 용기, 평등 의식을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자급적인 삶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본, 지위, 특권이 아니라 단지 실질적인 생계수단의 확보이며, 이것만으로도 현실화 될 수 있다. 실질적 생계수단의 확보만으로도 외부의 힘이나 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급하는 삶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 뿐더러 이미 남반구의 수많은 여성 공동체들이 자급자족하는 가계 경제 모델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삶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도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가계의 생계 유지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자급경제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역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식량 생산물의 생산 및 제조 방법의 조화를 위해 소비자-생산자의 자율 조직을 구성한다. ex)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
2. 생활과 노동의 공간적 분리를 폐지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임금 노동이 아닌 의식주의 자급을 위한 자급 노동이다.)
3. 생태적 방법을 사용하여 농업 생산 환경을 개선한다. ex)퍼머컬처



우리는 탄소포집기술과 같은 신기술의 개발에 의존하고 목을 멜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법으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술로 현상을 땜질하려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낳게 된다. 배출한 탄소를 어떻게 해보기 위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땅에 탄소를 가두고 유기적으로 농사를 짓는 영속 농법을 실천해야 한다.  



임금노동과 돈벌이 경제로 인해 원자화된 개인관계로 존재하는 대신, 우리는 이런 자급적 삶을 통해서 잃어버린 공동체적 연대의식과 유대감,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안전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 역시도 회복할 수 있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규칙들을 들 수 있다.



1. 생산자와 소비자 간 익명성 줄이기
2. 인간 관계의 질 높이기
3. 좋은 생산물에 정의로운 가격을 지불하기
4. 공동체 내 상호 의존
5. 건강한 음식 섭취-생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화학약품을 거부할 것
6. 지역적인 공급 시스템 구축하기
7. 계절에 맞는 제철음식 공급
8. 꼭 필요할 때만 육류를 소량 취함
9. 타국에 비용을 전가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 (북반구의 가격 경쟁력을 위한 남반구 착취 반대) 자국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함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힐러리에게 암소를"에서는 실제로 자급하며 살아가는 소농 및 여성 공동체의 사례를 조명하며 어떻게 현실화 될 수 있는지, 이러한 실천적 방법이 현실화 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한다.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과 논의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다른 에코페미니즘 서적에서도 이 책을 많이 인용한다.


원래는 절판된 책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고 깊게 감명을 받아 출판사에 재판 요청을 보냈고, 정말로 재출간되었다. 이제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어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을 취하며,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어떻게 -특히 여성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실제 사례들을 들어 실천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더 가지고 더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 소비주의 사회에서 자급하는 것은 상당히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격언을 떠올려본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급하는 삶을 통해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지속가능하며, 공동체 속에서 소속감과 연대를 느낄 수 있는 온정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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