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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4. 2022

현대인은 태어난다. 일한다. 그리고 죽는다.

삶을 잃어버린 생존의 현대인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을 과연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좋은 삶, 참다운 삶. 내가 오늘 진정으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 자유롭게 구상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인의 일생을 한 줄로 일축하면 제목과 같을 것이다. 그는 태어났고, 일하고, 죽는다. 현대인의 삶은 다양화될 수 없다. 인생의 흐름은 단지 무엇을 하며 돈을 벌 것인가와 그 돈으로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단지 돈벌이 수단의 선택. 번 돈으로 어떤 집을 소비하고 어떤 음식을 소비하고 어떤 차를 소비하고 어떤 옷을 소비할지, 시장이 차려놓은 생활양식 중 어떤 것을 구입할지 선택할 뿐이다. 인생의 고민이 전부 돈에서 돈으로 귀결된다. 일생의 흐름 또한 돈을 벌기 위한 준비에서 회복을 위해 번 돈을 쓰는 것, 다시 쓰기 위해 또 돈을 버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지만 결국 그들의 삶은 동일하다.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가. 그 돈으로 무엇을 샀는가.


결국 돈을 벌고 돈을 쓴다는 전체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인간 삶의 본질일까?



많은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서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오히려 노동과 자본에 더욱 깊이 예속된 삶을 안겨준다. 인간은 자유를 구입하기 위해 자유를 헌납하고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된다.








과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본래 노동은 인간 삶의 본질이 아니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루덴스라는 학명은 존재하나,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학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은 본디 노예나 머슴들이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이 스스로 노동하기를 자처하지 않았다. 인간은 노동을 회피하길 원해왔다.  

자유인은 노동하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오로지 생존만을 향해 움직인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가 전부 돈으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돈을 벌고, 입기 위해 돈을 벌고, 거주하기 위해 돈을 번다. 살아있기 위해 돈을 벌고 노동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은 생존 그 이상이 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노동과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결국 살아있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살아있는 셈이 된다. 그렇게 일생을 돈에 희생하지만 정작 돈은 아무리 있어도 만족할 수 없어서, 인생을 노동에 바치고도 평생을 결핍감에 시달리며 겨우 생존하는 꼴이 된다.


삶을 되찾자는 의미의 워라밸또한 그런 점에서 모순적이다. 나인 투 식스 워크를 한 후 집에 돌아와 보내는 일명 "라이프"의 시간은 삶을 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단지 내일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오늘 노동하며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부수적인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분히도 기계와 같은 방식의 삶이다. 기능하고 작동하기 위해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계처럼 노동하기 위해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인간이 된다.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을 위한 시간으로 나뉘는 인생을 두고 워라밸이라고 부르는 것은 감히 기만이다.


충전의 형태는 무의미한 소비들로 이루어진다. 여가, 레저, 취미는 일상에서 벗어난 잠깐의 이벤트로 취급되며 시장의 영역에 포섭된다. 상품으로써의 여행이나 오락은 순간의 쾌락만을 선사할 뿐 끝나면 공허만이 남는다.







심지어 억만장자가 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워라밸을 찾아서는 안되며, 인생을 노동과 동일시하라는 자기 파괴적인 노동 윤리가 자기 계발과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 윤리는 오로지 성장을 위한 불필요한 생산과 과잉 노동을 은폐한다. 그렇게까지 노동해서 만들어내는 상품들이 세상에 꼭 필요한지 묻는다면 글쎄다.


노동과 자본이 절대 진리로 격상하면서 정작 진짜 삶. 가계의 일, 살림살이, 오늘 내가 식사하는 시간, 무언가에 쫓긴다는 감각 없이 정말 내가 하고픈 것을 원하는 만큼 느긋하게 즐기며 보낼 시간은 뒷전이 되었다.


본디 경제-economy-는 그 어원이 살림살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집안의 살림살이가 곧 경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경제는 살림살이와 돈벌이가 서로 유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은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 자체로 증식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으며, 주식, 금리, 투자, 투기가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뉴스에는 온통 물가와 돈벌이에 관한 이야기만이 가득하다. 우리의 살림살이는 비가시 영역으로 지워지고, 현대인의 인생에서 삶은 끝장난다. 거기엔 더 이상 삶이 없다. 오로지 자본을 얻기 위해 생을 연명하는 기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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