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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30. 2022

15000원이 남긴 생각

가상에 목매는 인간상 극복하기 

나는 매달 가계부를 쓰고 월말마다 지출액과 수입액을 정산하는데, 이상하게 계산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보면 항상 미국 ETF에 넣어 놓은 돈이 변동해서 생긴 차액 때문이다. 정세나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서 내가 가진 돈이 오락가락한다. 이번 달은 계산해보니 15000원이 ETF 때문에 비었다. 순식간에 그만큼의 금액이 내 손에서 증발해버린 것이다. 



사라진 15000원을 보면서 새삼 실감하게 된 것은, 역시 돈은 허구라는 거였다. 세상에 실재하는 그 어떤 것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그 가치가 바뀌거나 더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돈이라는 게 다 무엇인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약속일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허상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면서 실존하는 것들을 등한시하고 있다. 이 땅에 발 디디고 살아있는 존재들이 살도록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 생명과 삶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숫자로 환원되고 계산된다. 


치료를 하는 게 돈이 되지 않으면 치료를 진행하지 않고, 내가 내 생명과 목숨을 구가하는 일마저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의료의 영역 또한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되었다. 돈이 되지 않으면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채소가 버려지고, 쌀값이 떨어지면 판매 가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먹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곡물들을 추수도 하지 않고 밀어버리기 일쑤다. 마치 인간의 시야가 돈으로 가려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인 만큼 돈이 실존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면 바로 붕괴한다. 이토록 허약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질서를 장악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곧바로 공중분해되는 유령 같은 존재가 지구상에 실재하는 것들보다 우선시 된다. 





돈은 자연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례적이고 변칙적이다. 자연계 그 어디에도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없다. 자연계는 순환하기 때문에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형태만 바뀔 뿐, 늘 지구상에 같은 총량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돈은 다르다. 부패할 줄 모르고 순환할 줄 모르는 돈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한순간에 증발한다. 그 가상성의 정도가 클수록 이런 특징은 도드라진다. 예컨대 현금이라면 지난달에 들고 있던 30만 원을 쓰지 않고 그냥 두었을 경우 그 지폐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용했을 경우 다른 사람의 지갑으로 순환하기라도 한다. 


그러나 주식, 코인, 디지털 가상화폐 등은 현금이 지니는 사물의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 내 계좌에서 증발한 금액이 어디론가 순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오르거나 내려가고 생기거나 사라진다. 그만큼 허상적이고 신기루 같은 것이다. 





사실 돈은 인간에게 있어 필수품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토양, 물, 공기, 태양과 같이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이 세계의 전부인 양 취급되기 시작했다. 취급됨을 넘어서 이제 돈은 대우받는다. 






자연계 그 어떤 동물도 필요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데, 오로지 인간만이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의 시야를 돈으로 차단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돈으로 차단하고, 불신과 이기심을 관계의 토대로 놓게 되었다. 


고양이를 잘 보살펴주면 고양이가 선물로 쥐를 잡아오듯이, 본래 생명들은 서로에게 선물하는 경제를 기반 삼아 살아왔다. 불과 몇 세대 전까지의 인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도입과 근대화 과정, 압축적 자본주의의 발달로 이러한 관계는 전부 와해되고 이익과 손실을 따지는 딱딱한 관계가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그 결과 생긴 부작용은 정신적 불안, 고립, 우울,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긴장이다. 서로 선물하는 삶 대신 시장에서 구입하는 소비자의 삶을 살게 된 인류는 수동적인 소비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삶의 능동성과 상호 신뢰, 돌봄을 잃어버린 인간은 그 공허함을 사치품 구매, 여행, 맛집 탐방으로 채워보려 하지만 더 많은 물질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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