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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6. 2023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진실

회피하는 대신 마주해야 할 때

오랜만에 아주 좋은 책을 만났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책인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은 눈물을 흘릴 뻔했고, 책을 덮으면서는 '이건 모두에게 꼭 읽혔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지음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소비문화, 국가라는 체제가 숨기고 있는 부조리함과 현대인이 찬양하는 기술 문명 그리고 돈이 어째서 지금의 총체적인 위기를 불러일으켰는지. 그리고 인간이 잃어버린 정말 중요한 본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짚어준다.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의 원인이 동일한 곳에서 출발한다는 총체적인 인식이 담긴 책은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에는 저자가 1년 동안 무전으로 세계를 유목하며 얻은 이야기들이 총체적인 방면에서 고루 담겨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영국 런던에서 불현듯 든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숨 쉬는 것조차 돈인 이 세상에서, 과연 돈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정말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식, 주, 그리고 교통수단을 돈을 매개로 해결하는 대신 직접 해결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우핑을 시작한다.


우핑을 하면서 저자는 현대 문명 속에 익숙해져 있던 본인만이 자발적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심으로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숨겨져 있던 현대의 병리성을 깨닫고 진실을 알게 된다.


여정이 끝나가면서 저자는 지금 닥친 금융위기, 경제 침체, 사회적 불안과 불신, 대량 생산과 대량 폐기로 이어지는 낭비적인 소비주의,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 전쟁, 식량위기, 기후위기와 질병의 원인이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유토피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실 대안적인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미 문명과 현대 사회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던 입장에서는 현대 사회에 대해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온 처음 저자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많은 독자들이 저자와 같은 시선에서 출발하여 책 속에서 전개되는 여정을 통해 함께 진실을 깨우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장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인은 맛집을 찾아다니고 자극적인 맛을 좇으며 자신의 건강과 돈을 소비한다. 소비자들은 바로 이 무지와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스템과 사회가 어떤 짓을 저지르고 어떻게 우리를 기만하는지 예민한 눈으로 바라보자. 불편하지만 진실을 계속해서 알아가야 한다."



"영어 nature에는 본성과 자연이라는 뜻이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이 본래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 인간의 에고가 내면의 자연과 외부의 자연을 분리하고 물질주의가 인간과 자연을 멀어지게 했을 뿐, 인간의 본질과 자연은 모두 하나의 nature다."



"(제3 국가의 빈곤과 기아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달콤한 음식을 멀리하고, 커피와 차에 중독되지 않고, 우리 땅에서 나지 않는 과일들을 무리해서 수입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옷을 사 입지 않아도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육류 소비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아이가 소만도 못한 삶을 산다. 열대림에 살던 사람들과 야생동물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세계 곡물 중 1/3은 식료품 회사들이 가져간다. 그들은 곡물로 각종 간편 식품과 가공식품을 만들어 기아 해결이 아닌 현대인의 뱃살과 질병에 기여한다."



"도시는 연결의 안정과 완전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 분리와 소비를 목적으로 만든 시스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은 도시의 소비가 아닌 자연의 사랑에 있다."




사람들은 항상 문제의 책임을 더 큰 것에 돌리고 싶어 한다. 고기를 사 먹는 개인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업이 문제이며, 저렴한 수입 농산물을 사 먹는 개인이 아니라 대규모 단일작과 농약을 사용하는 농업이 문제이고, 커피를 사 먹는 개인이 아니라 불공정한 무역 체계와 커피 프랜차이즈가 문제이며, 가공식품을 사 먹는 개인이 아니라 소중한 곡물을 가져다 화학약품으로 음식에 장난질을 쳐서 파는 기업이 문제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축산업, 근대 농업, 지속 불가능한 어업, 양식업, 제3세계의 기아와 빈곤을 만드는 무역, 사람들의 건강을 망치는 식품 기업의 문제점을 알고라도 있으면 감지덕지일 지경으로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무관심과 책임 회피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개개인 모두에게 기아, 식량 분배, 기후 위기 등의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진국가에서 낭비적인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 모두가 이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없는데 한집 건너 한집마다 카페일 수는 없다. 고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없는데 정육 코너에서 고기를 파는 곳이 존재할 수는 없다. 기공식품을 먹는 사람이 없는데 비비고와 오뚜기가 사업을 지속할 수는 없다. 유행에 가담하며 불필요하게 옷을 사고 버리는 사람이 없는데 패스트패션이 성행할 수는 없다. 우리는 소비자의 탈을 쓰고 매일 정치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돈 쓰면서 살고 싶은데 무슨 거창하게 정치씩이나 갖다 붙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없다. 내가 오늘 하는 선택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로는 그저 대멸종에 가담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나 다름없다. 남을 살리기 위해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같은 대단한 목적 때문에 소비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지구에서 내가 멸종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가족이 미래에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내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착취 노동과 생명 학대에 가담하는 상품을 구입하며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평생 사람을 착취하는 기업 밑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는 노동을 감내하며 고된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지구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지구 위에선 남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내가 행복해질 수는 없다. 내가 한 일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문명 이전의 유목 원주민들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았다. 아무런 금도 장벽도 없는 둥그런 지구 위에서, 경찰도 범죄자도 없는 신뢰의 공동체에서, 모두가 부를 공유하는 풍요의 낙원에서, 이 땅의 구석구석을 바람처럼 누비며 살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조국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고,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명령이 아닌 양심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닌 평화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세계를 구하려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면 될 뿐이다. 인간은 단지 초원 위의 얼룩말처럼 걱정 근심 없이 태평하게 오늘 하루,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즐기고, 느끼면 될 뿐이다. 그런 단순한 일을 하지 못해 삶을 복잡하고 고되게 만들다가 결국 강제 임금 노동의 노예가 되었고, 지구 생태계를 망치게 되었고, 정서적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사태를 만든 건 다름이 아니라 인간 자신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으로 바꿔나가야만 한다.



"소비주의를 대체할 시스템은 자급자족이다. 은신처, 먹거리, 옷, 에너지 등 생존에 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자.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부를 창출하는 노동이 아닌 생명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창조하는 노동을 하자.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때 불필요한 낭비나 무의미한 노동은 발생하지 않는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 인간의 기본 생존 욕구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세상의 모든 불안과 경쟁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참 존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부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다. 행복과 자유와 평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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