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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9. 2023

무관심이 나를 지치게 할 때

최근 한 달 동안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글을 쓸 동력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아무도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시청하는 방송은 나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집 안에 왁자지껄 울리는 멍청한 소리에 화가 났다.


어느 채널을 돌려도 고장난 것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티비는 24시간 내내 마약같은 행복을 송출한다. 너무 맛있어요. 너무 예뻐요. 너무 재밌어요. 너무 잘 팔려요. 혹은 반대로 온갖 불만을 토로한다. 너무 맛 없어요. 너무 구려요. 너무 재미없어요. 너무 안 팔려요. 불만을 듣는 사장들은 후자를 전자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너무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방송은 현실을 시럽과 설탕과 소스로 덕지덕지 버무려 은폐한다. 겉면에 유려하게 발린 장식물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웃는 가면은 찌든 영혼을 화면 앞에 가둔다. 화려한 공작술은 도파민을 조종한다. 그럴싸한 요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따윈 알 바가 아니다. 그런 건 돈 앞에서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출처 헤럴드 경제



문제는 온통 돈이 되는지 아닌지다. 요식업이 낭비하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건 알고싶어 하지도 않고 알아서도 안된다.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 농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정작 굶어 죽는다는 사실 따위 관심 밖이다. 고기가 되기 전 동물들의 모습 따위 모르는 게 약이다. 내가 사 먹는 그 음식이 바로 지구 반대편의 영양실조를 낳는다는 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온통 먹고 마시는 방송 사이 또 먹고 마시는 광고가 나온다. 누군가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누군가는 흙탕물을 마신다. 즐거워서 미치겠다는 환락의 얼굴이 지나가고 나면 죽지 못해 살아있는 눈망울들이 비쩍 마른 몸으로 겨우 숨 쉰다.


광고가 지나면 다시 앵무새같은 방송들이 연달아 텅 빈 말을 퍼붓는다. 돈, 맛. 돈, 맛. 그러다 돈 맛. 오늘은 장사 천재, 내일은 웃는 사장, 모레는 골목 상권을 제패하고 글피는 글쎄, 망해가는 식당의 환골탈태려나.



좀비처럼 이승을 떠도는 사람들 역시 너무 바쁘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란 요원하다. 네가 먹는 게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귀를 닫는다. 조금도 불편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소비할 기력은 있지만 불편할 기력은 없다. 개같이 지친 생산자는 엄마에게 젖 달라 떼를 쓰는 갓난쟁이 아기처럼 집에 돌아와 떼쟁이 소비자로 변모한다. 달래줄 것은 오로지 물질뿐이다. 물질 중에서 가장 쉽게, 누구나 접할 수 있고 빠르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건 역시 음식이다. 생존의 수단은 망막과 미뢰를 얼마나 잘 사로잡는가 하는 미끼가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구세주같은 방송을 봤다. KBS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였다. 제목은 "지구 위의 블랙박스". 거기에선 파괴되어가는 맹그로브 숲을 보여주었다. 줄줄이 늘어선 팜유가 망친 맹그로브 숲을. 팜유로 인해 무너진 생계를. 새우 양식장이 망친 맹그로브 숲을. 새우 양식장으로 인해 무너진 생태계를.



 라면을 가공할 때 쓰이는 건 그 팜유다. 간편식은 지구의 탄소를 흡수해주는 숲을 먹어치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뉴스에서는 라면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뭐 대단한 일인듯 자랑스러워한다. K-푸드의 진출이라나 뭐라나. 어쩌다 K-푸드가 산나물이 아니라 불닭볶음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라면은 서민 물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라면 값이 올랐다고 걱정을 한다. "누구나 라면을 먹을 권리"를 말한다. 정작 그 라면이 누구도 건강하게 식사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공중파 8시 뉴스에서조차 다뤄주지 않는다. 팜유는 지력을 크게 소모하고, 다른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팜유로 무너진 땅은 회복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방송에선 보여주고 있었다. 팜유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먹는 라면이 생태계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었는지. 맹그로브 숲을 방문한 출연진이 말했다.


"사실 우리가 먹는게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건지 우리는 잘 모르잖아."




그 말이 그토록 와닿았다. 평생 모른 채 멍청하게 살라고 종용하는 방송들과 달랐다. 라면에 차돌박이 넣어 만든 불량식품을 멕시코 사람들에게 버젓이 팔고 나자빠진 방송들과 달랐다. 세계인의 건강과 온실 가스로 뒤덮인 지구를 담보로 장사하는 꼬라지만 공장처럼 찍어내는 예능들과 달랐다. 우리에겐 진실을 알려주는 말들이 필요하다. 이런 목소리가 필요했다. 너무나도 절실했다.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다. "지구 위의 블랙박스"는 2100년까지 인류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다소 유토피아적인 전망을 전제로 2023년 인간들의 만행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인간의 무지가 빚어낸 참극을 보여준다니, 사막 속 오아시스 같았다.


방콕의 새우를 먹겠답시고 숲을 양식장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새우를 수입해오는 만행을 그만 둬야 한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타이거 새우니  랍스타니 뭐니 하는 걸 내놓는 게 특급 급식이라는 둥 찬양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아무도 지구의 목소리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요식업 역시 마찬가지다. 요식업 알바도 해봐서 알지만, 식품 낭비가 상당히 심하고, 한겨울에도 후끈거릴만큼 여러 기기를 계속해서 가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전력 낭비도 심하다. 선진국의 유통, 소매와 소비 단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만으로도 기아 퇴치는 거뜬할 정도인데. 맛집이니 뭐니 해가며 다시 만들고, 통째로 버리고, 레시피 연구랍시고 만들었다 버리기를 반복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보여준다. 이걸 이렇게 낭비하느라 12억명이 영양실조를 겪게 만든다니. 정작 한국에선 저런 걸 먹겠다고 맛집 기행을 나서느라 나날이 치솟는 비만율로 시서스 다이어트, 유산균 다이어트 온갖 다이어트 보조제 산업만 살 판 났는데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인간과 지구의 건강을 이야기하는 방송은 낮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629/0000247303



어떻게 해야 그만두자는 말이 닿을 수 있을까? 온통 매출과 맛과 화려함에만 치중한 장사꾼(을 가장한 사기꾼)방송이 활개치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인간이 자연 앞에 겸허해지고 검소해지며 소박해지는 길을 찾자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들어줄까.


브런치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사람들의 관심사는 "내 김밥이 제일 맛있다"는 것과 "시댁이 나를 힘들게한다"는 것 뿐이다. 그 외에는 뭐, 커리어로 인정 받는 법이나 외모 가꾸는 법 정도?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나 만들기' 혹은 '사회에 치이고 보니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자위에만 빠져있다.


기후위기는 인류 모두가 처한 생존의 문제다. 재난은 돈이 없을수록, 약자일수록 더욱 취약하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인데도 사람들은 당장 오늘 맛있게 먹은 제육볶음 자랑이 더 시급하다.


연어 양식장이나 공장식 축산의 진실, 식량 낭비와 기후 위기, 생태계 파괴를 가속 시키는 육식... 같은 건 뒷전이다. 그래서 저 백반집 오늘 매출이 얼마라고? 퀭해진 눈 밑으로 어제 본 차돌박이 라면에 폭탄계란찜 먹으면서 채널이나 돌리기 일쑤다.


나는 이 무관심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까. 모르겠다. 막막하다. 종종 울고싶다. 절망적이다.


그러나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당장 나처럼 미약한 존재가 모두를 바꿀 순 없다. 그러나 단 한사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무엇이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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