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ct 22. 2023
글쓰기로 '최연소 대상'을 받았다
인문 칼럼 공모전 대상 수상기
솔직히 말하면 내 글은 '브런치에서 먹히는 글'은 아니다.
내 글은 남들처럼 친절하지도, 일상적이지도 않다.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듣고 싶어 하고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글엔 고부갈등도 없고 부부갈등도 없다. 돈 잘 버는 법, 승진하는 법, 사치 부리는 법,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법, 요즘 유행하는 방식의 미니멀리즘을 "예쁘게" 실천하는 법 따위는 다루지도 않는다.
음식 얘기를 해도 감성적인 사진 한 장 없고 요즘 에세이 st. 혹은 브런치 식의 제목 짓기 같은 건 일절 하지도 않는다. 안 그래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서 개인주의 끝판왕을 달리는 요즘 MZ 세대들한테 곰돌이 푸가 위로까지 해주는 글의 성격 하고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SNS의 성격이 강한 브런치 특성상, 높은 조회수와 많은 구독자를 위해서는 잦은 업로드가 필수다. 나는 게으르기까지 해서 잦은 업로드 역시도 글러먹었다.
내 글은 브런치에선 어떻게 해도 주목받긴 힘들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와 상관 없이 그냥 이 플랫폼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봐야겠다. 성과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브런치 내에서 크기를 키워 갈 만한 요소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나보다 더 늦게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고, 더 늦게 생태적인 삶에 눈을 뜨고, 더 늦게 브런치를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지만 내 글은 그렇지 못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글은 다분히 에세이적이고, 내 글은 다분히 논평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머리에 품 안 들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적 글을 원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자기 전시도, 사진 촬영도, 감성 팔이도 안 좋아해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자질은 부족하다.
나는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좋아요만 가득한 이야기, 남이 원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이 이제는 제발 주목해야 하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현대 사회 에고의 니즈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글을 쓴다. 어떠한 투철한 정의감에 취해 내가 뭐 용사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되고, 나는 안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구독자를 만들고 내 명성을 높이기 위해, 브런치에서 잘 나가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생태적인 메세지에 감응하고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고, 지금의 사회를 의심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 위안을 삼았다. 내 글쓰기 자질이 부족한가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다독여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인문칼럼 공모전에 출품했던 글이 대상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내가 대상이라니. 브런치에도 한 번에 심사 통과를 했을 정도고, 이전에도 소설 정도는 몇 편 써왔기 때문에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대상이라니.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나 말고도 충분히 많았다. 다시 읽어보면 내 글은 아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날것의 냄새가 났다. 그런데도 대상이었다. 믿기지 않아서 대상 수상 취소가 되는 건 아닐까 하루 정도 쫄아있었다. 다행히 수상 취소되는 일은 없었다.
수상작에 선정된 다른 사람들은 대개 글을 이미 쓰고 있던 사람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제 있었던 시상식 자리에 가니 다들 나를 보고 놀라는 듯했다. 누가 봐도 어린애가 들어와서 대상의 이름을 댔으니 말이다. 나는 그 상을 받은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 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대상에 선정되어 받은 상금은 둘째 치더라도, 이 일을 통해서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정말로 그냥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라고 말이다. 내 글은 일상적이지도, 대중적이지도, 남들이 원하는 얘기를 해주고 있지도 않지만 이 시대의 통찰을 담은 글은 맞았다. 사고의 폭이 넓었고, 거시적인 통찰을 담고 있어 인문학적 홍익만물 정신과도 부합했다는 점이 수상에 한몫했다나. 스스로 완전히 만족스러운 글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전문가가 인정한 좋은 글을 써냈다. 그 기량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내가 세상에 던지고자 했던 이야기로 상을 받았다. 진심이 통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꼈다. 진심과 철학을 담으니 읽혔다. "최연소 공모전 대상 수상자"라는 이름표는 나의 잠재력에 근거가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