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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Jan 12. 2019

나, 꿈, 일

  어젯 밤, 퇴근을 하고 팟캐스트를 녹음하러 판교에 갔다. 처음에는 People Analytics 모임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직장인에 관한 팟캐스트를 만드는 모임이 되었다. 우리의 핵심 주제는 직장인의 꿈이었는데,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직장인도 꿈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조금은 더 즐겁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라는 게 주제였다.


  직장인이 정말 쉬운 게 아니지만 가끔은 너무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해서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끊임없는 절망의 연속일 뿐인지,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직장인으로서 오늘 하루 조금 더 재밌고 행복하게 보낼 순 없을 지 얘기해보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세 명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가물가물 했는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꿈을 이야기하고 보니 다시 나에게 꿈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스무 살 때는 꿈이 없었다. 스물 한 살 때는 기숙사 형과 함께 사회 공헌을 하는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만드는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내가 살아 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나도 함께 살아있는 것 같아서, 나도 사회에 필요한 일원이 되어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 때 처음으로 맡게 된 역할이 HR Manager였는데, 별다르게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도 솔직히 몰랐었다. 그 1년이 내 인생에 지금까지 영향을 주게 될 줄이야.


   대학을 다니고 한 학기를 남겨두었을 때 사회에 나가서도 지금 동아리와 같은 일을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이 좋은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치를 품고 있는 사람들과 가치를 만드는 조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HR 컨설팅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이 되었고, 사회공헌과 CSR을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HR 담당자가 되어서 6년 간 첫 회사에서 교육과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했다. 주말에는 사회공헌과 CSR을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8년 째 나갔다. 첫 회사에서 행복한 시간들이 많았다. 나는 학교에서의 시간보다 오히려 회사에서의 시간들이 더 좋았다. 좋은 동료들과 좋은 사람들에게 늘 능력 이상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회사를 나오게 되었던 건 바보같이 꿈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존중받는 HR 담당자가 되고 싶었다. 존경받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 HR 담당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내가 팀장님이 되고, 실장님이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지, 스스로 떳떳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너무도 무력했었다. 시간이 가고 경력이 쌓일수록 나는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그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작년부터 스물 한 살, HR 담당자로서 나의 첫 보스였던 사람의 회사로 이직했다. 이직하기 까지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는데, 단 하나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 역시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였다.


  큰 꿈을 가지고 왔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이만하면 그 동안 충분히 노력해 왔고 HR담당자로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큰 조직에 있다가 작은 조직에 오니 정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 내가 전문성이라고 믿고 가지고 있었던 것들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 지 두려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타트업을 다녀라고 묻는다면, 역시 동료들 때문일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어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다른 힘든 일을 모두 떨쳐 낼 충분한 행복감을 준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일하다 보면 가끔은 12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이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미 꿈을 다 이룬 건가?


  지금은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만족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다. 작년에 갖게 된 좋은 조직의 이미지 중의 하나는 그 사람이 더 그 사람의 색깔로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조직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 어떤 것은 잘 못할 수 있는지, 어떨 때 즐거운지, 조직이 뭘 더 알아야 그 사람이 더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지를 알게 해 주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팀역할 진단이라는 걸 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행력이 없는 걸 늘 단점이라고 생각한 팀원이 있었다. 그런데 실행력이 없는 걸 단점이라고 생각을 한 적은 있었어도 아이디어가 많은 걸 정말 나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얘기했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었다고 두 어번 정도 얘기를 해줬었는데 진단이 되었든, 함께 글을 쓰든 그 무엇이 되었든, 조금 더 그 사람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걸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포기하지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고 싶다. 조직문화를 얘기하다보면 늘 그게 뭔지 모르겠고, 다른 것과 비교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뭔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하나 더 고민해보고 해보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얼마나 클 지 알지만 꿈이니까.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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