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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Dec 17. 2018

고양이를 찾습니다

"이사 할 때, 문 열어두면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니까 조심해야 돼요."

이삿짐을 싸러 온 기사님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 이야기부터 꺼냈을 때 나는 주의했어야만 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는 기사님은 이사를 하면서 한 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갔고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저희 집 고양이는 겁이 너무 많고 한 번도 혼자 나간 적이 없어서요."

그 때 나는 자만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양이도 사람도 어떻게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바보같이 확신할 수 있었을까.


오후 1시가 조금 되기 전부터 미리 싸둔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집은 1층이었기 때문에 짐을 나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기사님과 번갈아가며 짐을 트럭에 실었다. 평소에도 낯선 사람의 인기척이 나오기만 해도 침대 밑으로 숨는 팡팡이는 그 때까지만 해도 침대 밑에 조용히 숨죽여 있었다. 미리부터 이동장에 넣는 것이 더 스트레스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침대를 해체하면서 팡팡이를 꺼내 이동장에 넣을 생각이었다.


침대의 한쪽 면을 해체하고 다른 한쪽 면을 해체하는데 팡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거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팡팡이는 없었다. 겁이 많은 팡팡이가 절대로 밖에 나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좁은 원룸의 싱크대 밑과 책장 위, 화장실 안을 다시 뒤졌다. 그곳에도 팡팡이는 없었다.


"어 그럴리가 없는데..."

한 번 더 집을 뒤졌다. 밖으로 나갈 리가 없다고 확신하면 한 번 더 집을 뒤졌다. 확신은 갑자기 불안으로 증폭이 되었고 집 밖의 마당을 뒤졌다. 수풀이나 나무 밑에 숨어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도 팡팡이는 없었다. 다시 집을 들어가고 마당을 뒤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멀리 갔을 리가 없는데..."

그 순간 뛰쳐 나와 동네 주변을 돌았다.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점점 당혹으로 바뀌어갔다. 당혹이 커질 수록 나의 발걸음도 팡팡이를 부르는 목소리도 커졌다. 집의 윗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바퀴를 더 돌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랫 동네를 도는데 팡팡이와 똑같은 무늬를 한 고양이가 미용실 앞에 앉아 있었다. 생김새도 거의 비슷한 고양이였다. 그렇지만 체구가 팡팡이가 아니었다. 잠깐 고양이를 보는데 팡팡이가 아니라고 방금 생각했으면서도 혹시 팡팡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6년을 함께 했는데, 못 알아볼리가 없는데 혹시 팡팡이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다. 고양이는 나를 휙 보더니 등을 돌리고 살금살금 담을 넘어서 갔다.


"어쩌면 그 곳에 팡팡이가 있을 지도 몰라."

어쩌면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양이를 쫓아갔지만 다른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그 고양이마저 시야에서 곧 사라져 버렸다. 다시 그 고양이가 있던 곳으로 가봤지만 아무 인기척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아랫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너무 죄송한데, 한 바퀴만 더 돌아보고 올게요."

윗동네를 뛰어다녔고,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왜, 그 때 바로 팡팡이를 이동장에 넣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 거려서 정말 놀랐을텐데.


"너무 너무 죄송한데, 다시 한 바퀴만 더 돌아보고 올게요."

아랫 동네를 뛰어다녔고,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얼마 전 브런치에 사실 팡팡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왜 나는 그런 글을 써서 이 사단을 만들어버린 것일까. 이대로 밖에 나가서 살아 본 팡팡이가 길에서 죽게라도 된다면, 아니 지금 상황 자체로 나는 분명히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어제 동네에서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것을 목격하고 말았을까. 그대로 주저 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양이는 강아지랑 달라서 자기만 생각해요. 한 번 나간 고양이는 절대 찾을 수가 없어요"

기사님은 본인의 경험에서 확신할 수 있다는 듯 그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잠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나도 정말 팡팡이가 돌아올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사실 팡팡이는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기회만 생긴다면 떠나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잠깐의 순간에 이렇게 흔적없이 훌쩍 떠나버린 게 아닐까.


"정말 오래 함께 했던 친구라서요. 마지막을 한 번만 더 갔다 올게요"

윗 동네와 아랫 동네를 뛰어다녔고, 다시 한 바퀴를 또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못 찾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생각이 드는 동시에 못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를 검색했다. 고양이가 쓰던 그릇이나 배변통을 놓아두면 고양이가 24시간 안에 혹은 일주일 지나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릇과 배변통, 이동장을 집 옆 마당에 두고 다시 한 바퀴를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이삿짐은 모두 다 트럭에 옮겨져 있었고 기사님은 웃고 있었지만 슬슬 당혹감이 커지는 눈치였다. "고양이는 강아지랑 달라서 자기만 생각해요. 한 번 나간 고양이는 절대 찾을 수가 없어요"라고 한 번 더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절망감이 들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동네를 돌았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제발 찾게만 해줘. 이제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가면 캣타워도 사주려고 했단 말이야."

걱정과 불안과 자책이 뒤섞여 혼이 거의 다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디를,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왠지 이대로 팡팡이마저 잃어버린다면 나는 올해 마지막 남은 것마저 모두 잃어버리는 기분일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 이삿짐을 이사가는 집에 옮겨 놓고 다시 밤에 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다시 서울에서 분당까지 와야겠다고,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 동료들에게 도와달라고 할까, 실종 포스터를 오늘 바로 붙여야할까를 생각하며 다른 고양이를 발견했던 미용실로 들어갔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시는 것 같은데 제가 고양이를, 그러니까 오늘 고양이를 잃어버려서요. 혹시 발견하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주고 회사 명함을 건네줬다. 어떤 남자 손님의 커트를 하던 미용사는 무심하게 사진을 보고 명함을 받아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이삿짐은 잘 포개어져 트럭에 실려 있었다. 미소를 잃지 않으며 투철하게 직업정신을 발휘하던 기사님은 이제 마지막 실을 짐은 너라는 듯 나를 바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가야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도무지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갔다가 와야 하나. 



"여기 밑에 있는 거 고양이 맞는 것 같은데요"

이삿짐을 다 빼자마자 도배를 시작하던 아저씨 중 한 명이 소리를 친 건 그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 들어가 씽크대 밑을 살폈다. 씽크대 밑은 이미 두 세번 찾아본 곳인데. 제발, 제발이라고 외치며 다시 밑을 쳐다봤다.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고, 당황해서 손전등 어플을 키려다가 두 번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조명이 켜졌을 때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곳에 정말 몸을 한층 웅크린 채로 팡팡이가 기둥에 붙어 있었다. 평소에는 싱크대 밑에 숨어서 앉아있던 정도였는데 그렇게까지 벽에 붙어서 제대로 숨소리 조차 내지 않은 채로 있었다니. 손을 뻗어서 팡팡이를 씽크대 밖으로 꺼내 안아들었다. 손을 뻗으면서 발톱에 긁혀 상처가 났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돌아온, 아니 내가 찾아내 주지 못했던 팡팡이를 안고 놀라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너무 고맙다고 되뇌었다. 거기 그냥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고. 역시 그냥 니가 떠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앞으로는 정말 잘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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