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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08. 2019

나는 우리 아빠를 죽이고 싶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쓰는 독후감

"갑작스레, 그는 나에게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뫼르소는 아랍인 살해 죄로 법정에 기소되지만, 어머니 장례식 장에서 울지 않았던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어머니 장례식 바로 다음 날, 수영을 하고 난잡한 관계를 시작했으며 코미디 영화를 보며 시시덕 거린 것은 검사가 제시한 더없이 큰 사형 선고의 증거였다. 검사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 자신의 생명의 창조자에게 살육의 손을 뻗친 사내와 동급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법규들을 무시했으므로 이 사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의 기본적인 반응에도 무심했으므로 인간의 마음에 호소할 수도 없는 남자, 뫼르소. 사회적 보편과 어긋나는 이방인이므로 사형. 



"나는 우리 아빠를 죽이고 싶어."                                                                                                       


어째서 책을 읽고 그 날 새벽, 신촌의 주점에서 당신이 건넨 말이 다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당신 역시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법규들을 무시했으므로 이 사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의 기본적인 반응에도 무심했으므로 인간의 마음에 호소할 수도 없는 여자였을까. 그 때도 지금도 당신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결코 무심하지도 인간의 마음에 호소할 수도 없는 여자가 아니었다는 건 안다. 그 점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좋아하도록 만들었으니까.


 

아빠의 외도, 이복동생, 방치 그리고 내가 모를 수 많은 이야기들. 나는 당신이 아니었으므로 당신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만약, 내가 당신이었어도 아빠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빠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것만으로 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까.


 

인생의 한 단면도 안 되는 몇 가지 행동들로 섣불리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판단하고 비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뫼르소가 어릴 적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다면,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것이라면. 혹은 어머니가 외도를 저질러서 방치를 하고, 나이가 들어서야 뫼르소를 찾아온 것이라면. 우리는 왜 뫼르소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혹은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우리에게 과연 뫼르소의 행동 몇가지를 관찰하고 그의 인생 전체를 비난하고 사형을 내릴 권리가 주어졌을까. 



보편적 기준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을 판단하고 비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울음이 슬픔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행동이라고 해서, 울지 않은 것을 슬퍼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상실의 슬픔을 바로 표출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상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자의 행동 방식과 감정 표출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존중받아야 할 영역이지 보편으로 평가받을 영역이 아니다. 



나는 인사 담당자이고 오늘도 인생의 한 단면도 안 되는 몇 가지 행동과 이력들로 사람을 평가하고, 합격과 불합격을 내 손으로 선고한다.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 당신은 불합격자라고 선고한다. 가끔은 기계적으로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또 불합격 안내문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면접 평가 자리에서 우리 기준에서는 불합격인 것 같다고 결론짓고 돌아오면서도 며칠 내내 그게 마음에 얹혀 있다. 어째서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는 가혹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고 적합한 일인지 오늘도 고민한다.



고민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고민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몇 가지 행동과 이력들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지만,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이 떨어져라 면접 과정을 기록에 남긴다. 혹시나 면접 말고 놓치는 부분들이 있을까 눈과 귀로 그 사람들을 담는다. 혹여, 저성과자 면담으로 만나는 것이 두려워 그 전에 교육받고 성장했으면 싶어 육성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무수히 다양한 편견을 가지려고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남몰래 마음의 짐을 덜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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