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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6. 2019

망원동에서 고양이 잃어버린 날

"고양이는 잘 있지?"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온 그녀는 뜬금없이 고양이의 안부도 물었었다. 고양이는 잘 있다고 지금은 불러도 어쩐 일인지 오지 않는데 아마 자고 있는 모양이라고 이야기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출근하기 전 혹시나 싶어 고양이를 불러봤는데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평소 숨어있던 곳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고양이가 방을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난 번 고양이가 나간 줄 알았을 때 조차도 결국은 방 안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갈 고양이는 아니지. 집안 어디 분명 있는데 못 본 것이라 생각하며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전 내내 어쩐 지 불안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망원동까지 왔다갔다하는 시간 만으로도 점심시간이 거의 다 날아가는 셈이지만 도저히 불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짠 하고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던 고양이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가더라도 빌라 지하 정도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후다닥 뛰어갔지만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잘 있지?"


"아니, 너에게 그 말을 듣고난 후부터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26년 전 여동생을 동네에서 잃어버리고 난 후에 처음 겪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고양이를 찾는 법부터 검색하다 '망원동 좋아요' 페이스북 페이지에 고양이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누군가 고양이 잃어버린 걸 여기서 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내 일처럼 걱정해주었으며 집 주변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 주변부터 샅샅이 뒤져보라거나, 사료를 부어서 집 앞에 두고 문을 열어두라는 등의 조언을 해주었다. 한 번쯤 고양이를 잃어버린 경험들이 있는 분들인 것 같았는데 그 사실이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당장 오후 반차를 쓰고 고양이를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 지도 막막했고 갑자기 회사를 비울 상황도 아니어서 우선 회사로 돌아갔다가 퇴근하자마자 다시 찾기로 했다. 돌아가면서 고양이 탐정을 어떻게 구하는지 찾아봤다.


  오후는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그냥 오후 반차를 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퇴근 시간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내 죄책감을 두드리는 것 같았는데, 빗방울이 굵어질 수록 더 강하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찾아봤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응원글들과 함께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댓글들이 계속 달렸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집을 다시 한 번 뒤졌다. 역시나 고양이를 찾을 수는 없었고 빌라 지하로 다시 한 번 내려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주변에 숨어 있을 만한 구멍을 찾아봤지만 역시나였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절망스러운 마음이었지만 고양이는 절대 그 주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조언에 따라 집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했다.


  그러다 우리 집 빌라와 옆 집 빌라 사이의 공간에 나무 합판과 스티로폼, 문짝 등의 폐기물 등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왠지 그 폐기물 틈에는 고양이가 숨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쌓여 있는 폐기물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고 날씨는 더욱 어두워져 찾기가 어려웠다. 핸드폰 불빛을 간간히 비추면서 찾아봤지만 그 어떤 인기척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날은 더 어두워졌고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만 갔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팡팡아......"

"에에에에엥"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는데, 혹시나 잘못 들었을까 싶어서 다시 불러보았다. 그리고 고양이는 다시 울어주었다. 대답해 주었구나. 여기있구나. 그때부터 우산을 옆에 던져두고 비를 맞으며 다시 폐기물들을 뒤졌다. 안 쪽에서 소리가 나는 게 틀림없었다. 뒤적 거리는 정도로는 보이지 않아 아예 자재들을 통째로 옮기기 시작했다. 핸드폰 손전등 어플로 불을 비추는데 비에 젖어서 켜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이십 여분을 찾았을까. 계속 이름을 부르며 대답을 들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이러다 도망가 버리는 건 아닐지. 혹시나 내가 다른 고양이의 목소리를 착각한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분명, 그 목소리였는데...


  비를 맞으며 서 있다가 내 발 옆에 있는 구덩이를 봤다. 구덩이는 내 키보다 훨씬 더 깊었는데 핸드폰 불빛을 비춰봐도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이름을 불렀는데 어쩐지 구덩이 안 쪽에서 소리가 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짚어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선명해지는 울음소리. 안으로 손을 집어 넣으니 고양이가 그곳에 몸을 움츠리며 있었다. 너구나. 여기있었구나.


  너무 높아서 도저히 고양이를 안고 올라갈 수는 없었다. 이동장을 가지고 오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가서 이동장을 가지고 내려왔다. 이미 비를 많이 맞은 터라 더 이상 우산도 의미가 없었다. 고양이가 밖에 나가면 이동장만 봐도 도망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집에서도 이동장을 보면 슬금슬금 피해다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동장을 고양이 앞에 놓자마자 제 발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너도 고생이 많았구나.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구나.


  온 몸이 시멘트와 비와 눈물로 범벅이 된 하루였다. 다시 고양이와 만날 수 있었던 건 남의 고양이 일인데도 내 일처럼 걱정해주고 기도해 준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직접 다른 고양이 관련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친구들에게 알려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나라면 그랬을까 라고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안기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 또한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다짐하게 된 하루였다. 또, 늘 방 안에서 당연한 듯 있어주는 고양이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도 알게 된 하루였다.


다들 내 고양이 찾은 것처럼 축하해주고 고마워해줬던 분들. 정말 이 분들의 기도와 마음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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