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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엄마의 반찬

먼 친척 분이 돌아가셔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상갓집에 갔다가, 새벽에 일찍 다시 출상 때 나가야 해서 내 자취방으로 갔다. 가는 내내 걱정을 했다. 거기서 밤을 새신다고 해서, 집에 제대로 청소도 안 해놨는데... 게다가,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었다.


엄마는 내 까만 자켓 뒤가 터졌다며 오자마자, 옷을 꿰매주셨다. 그리고, 해야지 하면서 미뤄둔 가방의 앞단도 꿰매주셨다. 


그리고, 내가 샤워를 하러 간 사이 엄마가 냉장고를 청소하셨다. 냉장고 안에서 하얀 곰팡이가 피어서, 이제 먹지 못하게 된 반찬들이 쏟아졌다. 멸치, 콩자반, 깻잎, 꽃게, 고기 반찬 같은 것들.


반찬을 노란 쓰레기 봉투에 꾹꾹 눌러 담는데,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해 놓은 반찬. 아들 밥 못 챙겨 먹을까봐, 비싼 돈 들여가면서 해서 보내놓은 반찬을 나는 제대로 열어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썩힌 것이다. 

밖에서 파는 영양가 없는 음식들은 몇 천원씩 주면서 사먹고,

다이어트 한답시고, 단백질 쉐이크 같은 것은 타 먹었으면서,

정작,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그대로 썩혀버렸구나...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양 손에 노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가는데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노란 봉투를, 음식물 쓰레기 통에 조심히 던져 놓고 왔다.


나는 어쩌면, 엄마에게 늘 이렇게 양 손에 가득 무거울 정도로 받는 사랑을 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 왔는 지도 모르겠다. 


새벽 두시가 넘어서까지, 냉장고와 부엌을 정리해주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했던 엄마는 급해서 아들 밥도 앉혀 놓지 못하고 간다고 미안해 하셨다.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서울역에서, 이모에게 받은 김치를 건네주셨다.

냉장고에 김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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