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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아픈 게 익숙해지면

오랜만에 한의원에 갔다.
무리를 많이 하면, 어깨랑 목이 많이 결리는 편인데,
언제부터 아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야, '아프니까 병원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참았다가 가는 것 같다.

사실, 타인의 협박에 못 이겨서 간 게 컸다. 

너무 바쁘고, 아플 때에는 오히려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 같다.

진료를 받으면서 내가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와서 치료 받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하게 아픈 걸 참으면서, 계속 하느니 치료 받고 좋은 상태로 진행하는게 나을텐데... 

아픈 게 익숙해지다보니,
'아, 이게 아프구나.'라는 인식을 사실 많이 하지 못했다. 

정말 아파서 죽기 직전이 아니면, 인식을 못하는 것 같다.
쌓이고, 쌓여서 극에 달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데... 


어렸을 때는 사람한테 통증이라는 감각이 왜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아픈 걸 느끼지 않으면 참 좋을 텐데,

왜 통각이 있어서 사람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통증이 없으면 참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멈추지 않는데, 

통증이 없으면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치료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픔을 느낀다는 건,

상처가 나는 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게 하고,

생명의 위협을 알리는,

생존을 지키기 위한 본능일 지도 모른다. 


힘들고 우울한 일을 많이 겪고 나면,
점점 더 무덤덤해지려고 하고, 무감각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

강하다는 건 통증과 아픔에 점점 더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아픈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 순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병이 곪아서 회복하기 힘들어질 지도 모른다.
 

외적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내가 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심하고, 무덤덤하고, 곧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참 부러웠다.
내가 잘 하지 못했던 그 부분들이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속으로는 사실 병이 들고 있었다.

강하다는 건 잘 참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부분을 스스로 시간에 기대어 잘 치유해 내는 사람일 지 모른다.
 

나는 그걸 아무 이야기 안 하고, 잘 참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 

전에는 아픈 데도, 아프다고 잘 못하는 곰이었는데,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아프면 바보같이 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픈 게 익숙해지면...
나중엔 너무 아프다.

아플 때, 아프다고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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