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교지인지, 학교 신문인지에
낼 글을 써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셨다.
그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국어선생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셨다는 게,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던 게 정말 기뻤다.
“정말,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되나요?”
그렇지만, 며칠 뒤 선생님은 결국 내 글은 실리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정말 잘 읽었고,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시각에서는 아무래도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요지의 말씀.
아마, 나는 제도권 교육에 반하여,
하루 하루를 죽은 나무 껍질처럼 살아가는 학생의 이야기를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며, 내 나름대로 열심히 썼던 것 같다.(학교 입장에서 당연히 짜를 법 한...)
“그렇지만, 선생님.
이번에는 정말 쓰고 싶은 걸 써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라고 따져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왜, 학생들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숨기기만 해야 하나요?" 같은...
그러나, 나는 또
“아, 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라는 대답만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주신,
책상위에 있던 딸기맛 츄파춥스를 입에 물었다.
그때 나는, 어이없게도 내가 좋아하는 건
초콜렛이랑 콜라맛 츄파춥스인데,
“딸기맛도 꽤 괜찮네. 묘하게 참 단 맛이 나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처음 사탕을 입에 문 어린 아이처럼 그 맛이, 그 기분이 오묘했다.
내가 어린 시절 생애 처음 먹은 사탕은 무엇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른인 행세를 해야 하고 나서 처음 먹은 사탕은
바로 그 딸기맛 츄파춥스였던 것 같다.
속은 참 쓴데, 입 안에서는 달디 단 딸기맛 츄파춥스를
혀로 돌돌돌 굴리며 먹고 있던 내 모습.
어쩌면, 그 때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를 바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가끔 쓴 속으로 삼킨 채,
그것이 들킬까봐 입으로는 사탕을 물고 있는 내 모습.
단맛과 쓴맛을 그렇게 번갈아가며, 혹은 동시에 느끼며,
이상을 가슴에 품으면서, 입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만 해가면서,
하루하루 또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사실은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요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 네 상황에 그런 걸 쓸데없이 왜 배우냐, 영어 공부나 해라는 말이 두려워,
아직 아무에게 이야기도 못 꺼내는 것과 같은 상황들.
딸기맛 츄파춥스,
그 오묘하고 달콤했던 맛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