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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정말 책 좋아하나보네?

오랜만에 소설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책 한 권을 가지고, 세 달 동안 가방에 넣어 다녔다.


예전에는 책을 조금은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오랫동안 책을 손에서 놓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책, 좋아하나보네?” 


군대에 있을 때, 누군가가 물었다. 


“아니요, 사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훈련소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그 안에 있는 활자란 활자는 전부 다 읽으려고 애썼다.

그 내무반 안에 있는 책은 거의 대부분 다 읽었다. 


부대를 한 번 옮기고 나서 부터는 직접 책을 사서 봤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휴가에서 복귀할 때마다, 서점에 들러서 열 몇권씩 책을 사왔다.

나중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매 달 책을 열 권 정도씩 주문했다. 

그렇지만, 책 읽는 속도나 이해력이 많이 늘지는 않았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도 않았고, 금방금방 잊어버렸다. 


어떤 때는 책을 다 보고 덮었는데,

내가 무슨 내용을 봤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플래그십 포스트잇을 사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는 문장에 붙였다.

더덕 더덕 책에 공작색의 깃털처럼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리고, 노트에 펜으로 옮겨 적었다.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늘 두 세장 정도가 채워졌다. 


머리와 이해력에는 전혀 의존할 수 없었으므로,

그렇게라도 좋은 표현들과 구절들은 기억해두고 싶었다. 

기억해 두지 못하더라도, 훗날 노트를 다시 펼쳐들면 다시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늘 책을 읽는 과정은 즐겁기보다는 괴로웠다.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나는 사실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정말, 책 좋아하나 보네?”

“아니요, 사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럼, 왜 책을 그렇게 읽는 거야?” 


아마도, 군대 가기 한 해전의 봄부터 생긴 일종의 집착 아니었을까.

스무 살부터(아마도 태어나자마자가 아니었을까)

압도적으로 열심히 그리고 똑똑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늘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낮에는 기숙사에서 머물다가 저녁이 되면 이름을 잘 모르는 길거리나 한강을 쏘다녔다. 

그리고, 그 사람은 글을 참 잘 썼다. 정말, 잘 썼다.

그 사람의 글 솜씨라든가, 문화에 대한 식견이라든가, 

쉴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부지런함을 나는 동경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사실, 시기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과 멀리할 수 밖에 없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사람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치열하게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나는 그 사람처럼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을 누구보다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그 감성들이라거나 경험들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이야기를 할 사람은 있었지만,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었다. 

매일을 의미 있게 살아야한다는 강박감과 외로움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 책의 내용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라도,

왠지 책을 들고 있으면 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정당하게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아무리 기록해 보려고 해도, 의미 있는 일이나 사건이 생각나지 않으면

나는 그 날 읽은 책의 내용을 일기에 썼다.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 보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단지’ 보이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던 등교길과 하교길에,그리고 수업과 팀미팅 이외에는,

거의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므로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책만 집어 들면, 오늘도 허무하게 날려버린 내 하루가 정당화된다는 생각에

늘 책을 두 세권씩 가방에 넣어 다녔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지독하게 외롭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땐, 사람에게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서점과 도서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을 보면서, 아주 조금 희망을 품었다.

평생을 걸려도 지금까지 써진 과거의 책들을,  앞으로 출간될 미래의 책들을 다 볼 수는 없을 테니,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된다면 앞으로도 무작정 외롭거나 지루하기만 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이 아주 많지 않더라도 도서관에는 갈 수 있으니까,

아무리 혼자서 외로운 시간이 와도,

그곳에서 고요하게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반강제로 나 스스로에게 자행했던 책 읽기를 멈췄다. 

아주 가끔씩, 보고 싶을 때만 보고 싶은 책을 몇 권 정도만 읽었다. 


적어도, 나는 이제 억지로 책이라도 읽어야 했던 그 아이보다는 많이 자라고,

또 행복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 읽었던 책은 김연수의 원더 보이였다.

아주 외롭고, 사랑을 하게 되면서 초능력을 잃어버려서 평범한 소년이 된 이야기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나도,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그 아이를 스스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오랜만에 밀려 오는 어찌하지 못하는 씁쓸함과 외로움과,

잠이 들 수도 없는 새벽 두 시를 주체할 수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건너고, 다시 한강과 나란히 달렸다. 


마포 대교 위의 각각 마디 마다 분절되어서 서 있었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고, 함께 서 있었던 사람들이 해 준 이야기가,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둡고 조명도 제대로 비추어지 않는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길은 아무리 달려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오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오는 길이 아니었다. 


처음 오는 길이 아니었다.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 시절 이름이 없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던 길 중의 하나였다.

그 날의 내가, 내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다. 


자전거의 기어를 다 올리고,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는데도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보이는 그 아이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지금의 내가 아무리 자전거로 달려 보아도,그 아이를 잡을 수 없었다. 

따라잡아서, 고개를 돌려 세우고 싶었다.

괜찮다고 그 아이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데 정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리고 어두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전거를 타는데, 미친 사람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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