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흑석역에서 사당역까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택시 아저씨는 약속 교대 시간이라서,
사당역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잘됐다며 좋아하셨다.
약속 교대 시간에 빨리 안가면,
다른 아저씨들이 "당신만 돈 벌려고 하냐며" 화를 낸다고 하셨다.
택시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는 아저씨.
내가 보기에도 뭔가 어설픈 느낌이 났다.
가까운 거리이고 빨리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길도 잘 모르는 것 같고,
길은 여전히 밀리고,
어쩐지 운전도 미숙해 보이는 아저씨.
젊은이는 요새 뭐하냐며,
젊은이들이 취직하고 일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며
걱정을 해주셨다.
"네 그렇죠, 요새 힘들어진 것 같네요^^."라고 두런두런 이야기.
사당역에 거의 다 올때 쯤,
아저씨가 정말 빨리 복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나이 든 아저씨 살리는 셈 치고,
여기 쯤에서 내리면 안되냐고 하셨다.
웃으며 네 그럴께요 :D 라고 했지만,
나도 약속 시간 다 되가는데,
이런 택시 아저씨가 있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이제 곧 내리려던 참에
청년 그렇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자신은 20년 넘게 군인 생활을 하다가,
한달 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있다고 하셨다.
장학 재단 같은 걸 만들기 위해,
은퇴 후에도 택시 운전을 시작하셨다고
아직 미약하지만 당신에게 꿈이 있노라 하셨다.
그리고 내리는데,
청년 힘내라고 손을 잡아 주셨다.
택시에 내려서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데,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 아저씨 뭔가 허둥지둥하고 어설퍼보였지만
고단한 삶에 찌들지 만은 않은,
아저씨만의 자신만만한 눈빛이 있었던 것 같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연세에도 꿈이 있고,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
장교 출신이면 더더욱, 교대 시간 늦었다고 욕 먹고
정말 달갑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나란 남자, 장관님을 모시며 숱한 장군님과 간부님들을 모시지 않았던가)
나도 무슨 일을 하든,
가슴 한 켠에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눈빛 만은 적어도 살아 있지 않을까.
"현실이 이렇게나 힘든데, 꿈 같은 소리 집어 치우세요."
라는 말 보다는,
"아니, 꿈도 이상도 없이 어떻게 현실을 견디라는 말이에요?"
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다시 한번, 그 아저씨 택시 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