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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축축하다

지난 화요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오랜만에 정장을 입은 날. 


비에 젖어서 그런건지,

땀에 젖어서 그런건지,

눈물에 젖어서 그런건지,

감상에 젖어서 그런건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그런건지, 

하루 종일 축축한 기분이 들었다. 


옷을 갈아 입어도 축축함이 사라지지 않고,

아무리 샤워를 하고 몸을 말려봐도 축축함이 사라지지 않네. 

축축한 기분으로 겨우 잠들어서,

눈을 떴는데도 전혀 축축함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커피 우유를 사먹으러 밖에 나왔는데

하늘이 너무 파랗고 맑아서,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어버렸다.


배시시 웃어버리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게 정리되는 느낌.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누군가 웃어버려서,

유치한 일로 느껴지는 것처럼. 

웃어버리고 나니,

어쩐지 자꾸 심각하게 있는 게 유치하게 느껴졌다.


기분도 갑자기 좋아졌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도,

순간에 갑자기 바뀌는 게 거짓말 같은걸까. 


지난 밤에는 그렇게 비바람치더니,

다음 날 아침엔 너무도 맑은 날이 되는 게 거짓말 같은 걸까.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너무 짜증을 내고, 신경질 낼 필요없는,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그런 가을의 날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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