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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작사 한 번 해보시겠어요?

작사 한 번 해보시겠어요?

라는 말로 끝나는 메일을 받고, 제안해주신 분과 일요일에 만났다.


“글을 써 보겠니?”라고 직접적인 제안을 받은 것, 누군가 내 글 때문에 감사하다고 메일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 이후 10여년 만의 일인 것 같다. 내 글을 보고 제안하고 나를 보러 와주시다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에 썼던 블로그 글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던 분인데, 그 때도 당시의 글이 본인의 상황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감사하다는 쪽지를 보내주셨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는 단지 말 할 대상이 없어서, 쏟아낼 곳이 필요해서였을 뿐이었는데, 우연히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움과 위안이 될 수도 있다니. 아주 쓸데 없이 생각만 많고, 우울 거리는 생각과 감정들도 어쩌면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부끄러운 생각과 감정들도 꾸역꾸역 적어나가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잘 하든, 못 하든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꿈꿀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의 끝 자락에서 이십 대 초반의 꿈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이십 대를 기억할 수 있는 어떤 글을 써보는 게 수줍지만 나의 꿈이었기에 정말 즐거운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승부욕이 강한 편이지만 이런 일을 할 때는 잘하거나 못하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일을 할 때 나만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숙명과 같은 질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은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일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아니기에. 그리고 지금은 두 가지 다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에는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잘할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수줍음 때문에 고사한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의미 없는 질문일 지도 모르겠다. 막상 내 생각보다 못한 일도 있었고, 내 생각보다 잘된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언제나 한 일보다는 시작도 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에 남았다.


그 분의 핸드폰에 1,000개 이상 저장되어 있는 녹음 파일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스토리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상황이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할 것이라는 말씀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일단 매달릴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서 더 진심이 와 닿았던 것 같다. 아직도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 것도 시작된 것은 없지만 무엇보다 즐겁게 한 번 매달려 볼 일이 생겨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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