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내 이사 준비로 분주했다.
열 평 남짓한 방을 옮기는 데 며칠을 토막토막 내어 조금씩 짐을 쌌다. 전 날은 그야말로 시간 단위로 토막토막 내서 옮기다가 쉬다를 반복했다. 내가 물건 정리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기도 하거니와, 손과 다리보다는 머리가 더 재빠르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미드에서 보았던가, 만화에서 보았던가 물건을 짚으면 그 주인의 추억이나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사이코 메트리“ 라고 한다. 참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정말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한 권, 연습장 한 권을 잡을 때도 어떤 생각들이 떠올라서 즐거웠던 기억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떠올라서 슬픈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나하나 상자에 넣어가며 책장 구석, 수납함 저 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발견하곤 했다. 무의식 속에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가끔 어떤 계기를 통해, 혹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짐을 싸는 일은 생각보다 잘 진척이 되지 않았다.
나는 생각도 물건도 잘 버리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옷이든 물건이든 필요 없는 것들은 최대한 버리려고 했다. 그래도 결국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만 따로 모아서 박스에 봉해두었다. 한 동안은 꺼내지 않는 편이 방 정리를 위해서는 좋을 것이다. 참으로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나의 딜레마는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네모난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 마치 언제라도 쓸 수 있을 태세로, 그렇지만 적당히 눈에 보이지 않게 잘 포장하면 된다니…… 집에서의 좋은 기억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나쁜 기억들은 아픈 마음으로 둥둥 떠다닌다. 부산스레 떠돌아 다니는 머리 속의 기억들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서의 마지막 밤. 그래서인지, 아닌지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어떤 것이든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늘 안타깝고 소중하게 보이게 만들어주는 묘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 번이 몇 번째 집일까 궁금해서 예전 글을 찾아봤다.
20대가 되고 나서 12번째 집이다. 2년 전에 내가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요즘 따라 자꾸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였다. ‘이런 미래였군’ 이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같은 질문을 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