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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아빠와 구두끈

아빠가 미국에 교육연수를 갔다가, 구두와 청바지 같은 것들을 사오셨다.

돌아오자마자,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어서 집으로 오라고,

맛있는 것들을 해놓고 기다리겠노라 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받으러 가는데, 세 달이 넘게 걸렸다.

여기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니까, 오랜 만에 칼퇴를 하고 가도

밤 열 한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나에게 해 먹일 것들을 하느라,

주방에 계셨고 따뜻할 때 먹으라며 이것저것 얹어주셨다. 

다음 날은 바닷가에서 너무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냈다. 


금방 이틀이 지났고,

아빠는 내가 입고 온 옷을 다림질해서 건네주셨다.

한 켠에서는 엄마가 오전 내내 가져갈 반찬을 만들어서 싸고 계셨다. 


버스터미널로 떠나기 전,

아빠가 사 준 구두를 신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끈이 풀렸다며 앉아서 끈을 묶어주셨다. 


자연스레 아빠의 정수리가 보였는데,

어느덧 머리 숱이 많이 빠져서 머릿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누구보다도 젊고 건강했을 그였을텐데,

내가 자라는 만큼 그렇게 아빠도 나이를 먹었다. 


아빠의 머리에 생긴 빈 공간만큼,

내가 자라서 그 사랑의 반의 반이라도 채워주고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곧 버스가 타고,

어느 때보다 아련한 마음을 가지고 버스를 탔는데,

다 이해한다고 나도 젊었을 때 그랬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타지에 나가서 회사에서 누군가의 돈을 받고 일한다는 것,

그 모든 과정들을 알아서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고 또 미안하다고 하셨다. 

겨우 3년이 채 안되었는데, 그렇게 30년을 다녔던 누군가를 생각하니

눈을 그대로 뜬 채 깜빡 거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들은 소중했지만 지금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들이 떠나갔거나 혹은 내가 지나쳐버렸거나. 

여전히 나에게 소중하게 남아있는 것,

내가 세상에 오기도 전부터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었고,

앞으로도 소중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아들이라서 그래도 참 행복하고,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어떤 아들에게 나도 그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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