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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사랑니

그저께 저녁부터 어금니 뒷쪽 잇몸이 너무 시큰거리고 아팠다.  

'왜, 이렇게 여기가 갑자기 아픈 걸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거기가 사랑니가 나는 자리인 것이 생각났다.


맞아, 나는 아직까지도 사랑니가 나지 않았다. 

손가락을 넣어서, 만져봤는데 뭔가 딱딱한 것이 잡히는 것 같았다.


'아, 정말 사랑니가 나려나 보다.' 

그 때부터, 사랑니가 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으로도 찾아 봤다. 


사랑니는 나는 사람도 있고, 안 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빠르면 초등학생 때 나는 사람도 있고, 30대가 넘어서야 나는 사람도 있나 보다. 


사랑니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사랑을 시작할 정도의 나이'(18~22세)에 난다고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 나도 사랑니가 결국에 나는 구나."

그런데, 치과에 가서 예약을 해야 하고, 이도 뽑아야 하고, 사랑니 뽑으면 밥도 못 먹고 아프다는데,

'또 귀찮은 일이 하나 늘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고, 

"아, 나도 진짜 사랑을 시작할 정도의 나이가 된 것일까?"라고 나름 긍정주의자 코스프레를 했다. 


그러다, 오늘 결국 일을 하는데 너무 신경쓰이고 아파서 결국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치과에 갔다.

사랑니가 눈에 보이기 전에, 미리 CT를 찍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지인들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치과는 정말 오랜만에 가는 거였다.

초등학생 이후로 언제 갔는 지 기억도 안 날 정도.

그동안 특별히 충치도 생기지 않았고,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안고 치과에 갔다.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사랑니가 날 것 같아요' 

씨티 촬영을 하고, 검사 소견을 들었다.


눈 앞에 놓여진 거대한 뼈 사진.

'턱 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군'이라고 생각했다. 


"사랑니는 나지 않았어요. 요즘에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잇몸 안 쪽이 많이 헐었어요."

'아, 사랑니가 아니었구나.'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드디어 사랑니가 나는 구나. 진짜 사랑을 시작할 나이가 된걸까?'라고 어처구니 없는,

긍정주의자 코스프레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약간 웃음이 났다.

있지도 않는 사랑니를 있다고 생각하고,

'아, 정말 딱딱한 뭔가가 잡혀!!'라고 생각한 것이나 '치과를 예약해야해!'라며,

어느 요일에 갈까, 어느 곳에 있는 치과를 가는 게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없지도 않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기 

"착각"이 가끔 사람을 얼마나 우습고 어처구니 없게 만드는지 


'그 사람은 지금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지금 나를 생각해서 의미 심장하게 이런 대화명과 글을 남긴 게 아닐까' 등등 

나 혼자서, 추측하고 착각하고 울고 웃던 기억이 났다 


"이제,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도 정말 크나큰 착각일지도.


정령, 그런 시기가 존재한단 말인가.


'진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이길래, 이제는 진짜가 오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을까. 

늘,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임했고 "진짜"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순간이 영원하겠지'라는 것도 착각이라지만,

'지금 순간도 결국 영원하지 않을거야'라는 것도 비겁한 오만. 


사람들이 또 바보처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번에는 착각이 아닐꺼야'라고 생각해서 겁없이 뛰어드는 게 아니라, 

어쩌면 착각인 것을 알면서도,

'즐거운 착각' 속에 빠지고 싶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니 가지고,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다니.

사랑니라는 이름이 18~21세,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에 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가 다 18~21세에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니도 언제 불쑥 생겨날지 모른다는 것. 


누군가는 그렇게 생겨난 사랑니를 안 빼도 되지만,

대부분 한 번쯤은 그 사랑니를 뽑아야만 한다는 것.

(첫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는 게, 정말 드문 것처럼) 


그리고, 사랑니를 뽑는 건 꽤 아프다는 것.

아프고 무섭다고, 뽑지 않으면 꽤나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것.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이별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도, 꾹 참고 일부러 뽑아 버려야,

나중에 다른 건강한 치아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아픔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또다른 누군가를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입 안 말고도, 마음 속에도 사랑니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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