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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Feb 11. 2018

창의적 돈지랄_나의 책 만들기

작년 초에 책을 세 권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였다. 한 권은 Clipidea 지속가능보고서로 2년 간의 작업 끝에 12월에 결국 인쇄와 소소한 발간회를 끝마쳤다. 나머지 한 권은 "훔쳐보는 일기장"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작년에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생긴 Clipidea 후배 H가 책의 1차 디자인을 해주었다. 그 결과물을 컬러 프린트로 뽑아서 보았을 뿐이었지만, 역시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과 직접 손으로 만져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어차피 나의 만족으로 끝날 일이지만 조금 더 욕심이 생겨 조금 더 교정을 했고, 드디어 책의 Prologue를 쓰게 되었다.


# Prologue


어렸을 적부터 내 책을 한 번쯤 꼭 갖고 싶었다. 지금도 아주 좋은 집이나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망같은 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은 편인데 나만의 책을 책장에 한 번 꽂아 보고 싶다는 욕망은 강하게 있었다. 막연하게 마흔 쯤 되면 나도 내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래서 2년 전쯤부터 서른이 되기 전에 써 봐야지 했던 게 벌써 서른이 넘어 버렸다.


처음에는 나의 20대를 소설 같은 형태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소설은 커녕 새로운 이야기를 시간 내서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싸질러 쓴 토막 글들이 1,000개도 넘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팔려고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활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갖고 싶은 것이니 나에게 주는 선물로 자가 출판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창의적 돈지랄이 따로 없다.


고등학교 때 나의 별명은 문학 소년이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문학 소년, 소녀들이 오늘도 교실에 앉아 있을까.  나도 그 수천 명 중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글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딛고 자기 만족으로 작게 일을 벌이고 싶은 것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삼선 슬리퍼를 신고 먼지 풀풀 나는 흙 바닥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가 교무실에서 호출하는 것을 듣고 달려갔다. 나에게 편지가 하나 와 있었는데 발신지는 대전이고 발신인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궁서체에 만년필로 쓴 듯한 한 장의 편지에는 “너의 글을 잘 읽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글을 쓰는 너 같은 손녀가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품권을 탈 목적으로 교내 글짓기 대회에 제출했던 글이 당시 한겨레 신문과 연관이 있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통해 신문에 기고된 적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한 켠에 있었던 글이었는데 대전에 사시는 70이 넘으시는 할머니가 손수 편지를 보내주셨던 것이다. 당시 그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도 모르고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날 비에 맞는 바람에 편지를 잃어버리고 답장도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억, 기쁨, 고마움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살면서 여자에게 처음 받아 본 팬레터이기도 했다. 그 글은 나중에 한겨레 신문의 글쓰기 강좌 자료와 어느 논술 강사의 그릈기 자료로 쓰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글이다.


모의고사 치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글 잘 읽었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보면 좋겠어” 라고 얘기해 주고 가셨던 국어 선생님. 1년 내내 국어시간마다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셨던 선생님. 어쩌면 매 해 모든 반에 들어가서 말씀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들이 바람이 되고 희망이 되고 꿈 같은 것으로 내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달리는 블로그의 댓글들이 꿈을 지탱해주는 이유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서, 그렇지만 혼자만 쓰기는 또 싫어서 몰래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여름에 덥다고 에어컨을 틀어 놨으면서 이불은 꼭 덮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심리 같은 거 랄까. 어디서 오셨는지 내 글에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가 댓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나는 나의 가장 취약하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와 생각들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안이나 우울 같은 불완전해 보이는 감정 조차도 내가 겪어내고 기록해 두면 어떤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꿈을 불어 넣어줬던 두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진심인지 농담인지 나중에 글들을 책으로 엮어봐도 좋을 거 같다고 이야기 해준 몇 분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작가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는 사람은 되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글로 인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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