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6. 2018

퇴사고민 9주차_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주말에 정말 오랜 만에 집에 있다. 보통은 스터디를 가거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뭐라도 하러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고는 했다. 이렇게 낮에 내 방에 있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오랜 만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쉴까 하는데 온전히 쉬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밖에 나갈까 생각해보니, 아직 1월 중순이라 날씨가 너무 춥다. 잠깐 현관을 열었다가 바람을 확인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래도 나가야 뭐라도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문득, 요즘 상황이 딱 집 안에서 현관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 방 안에만 있어서 이제는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문을 열었더니 바람은 의외로 너무나 차갑고 세서 몸이 먼저 얼어버린다. 어느 쪽도 이유가 있고, 어느 쪽도 확실하게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다.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와 나가지 않아야 할 이유들을 생각해 본다.
두 가지 생각 모두 그럴 듯 해서 생각들이 마구 뒤엉키고 진이 빠진다.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나는 깨닫는다. 결국엔 내가 스스로 물어보고 정리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 동안 나에 대해서 많이 알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방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가서 춥더라도 눈을 보고 겨울을 만끽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냥 이렇게 봄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리면서 주저하기만 하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만 하기보다는 적어보고, 걷고,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계속 적어보고 다듬어 보면 조금 더 나아지려나.


  언제 이렇게 불안했을까 생각해보니 꼭 6년 만인 것 같다.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HR에 합격하고, 또 다른 회사를 합격했을 때 선택지가 더 생겨서 더 행복할 것 같았지만 그 기간 동안 나는 너무 불안했다.


 더 다양하고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후회할 선택을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었다.


  선택의 그 순간까지 떨었던 것 같고, 마지막 입사포기 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후회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1년은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얘기만 하고 다녔던 것 같다.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때의 선택을 지금 많이 후회하지는 않는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또, 걸어왔던 길은 꽤 좋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나를 이 선택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의 시차 적응도 있겠지만, 마음과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계속 새벽 두 시에 깨고는 잠에 들지 못했었다. 이번 주는 다행히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고 있다.  불안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불안과 변화와 선택이 내게 가져다 주는 것의 긍정성을 계속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두려워하는지 처절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의 위치와 역량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있다. 이 짧은 터널을 지나면 조금 더 깊어질 수 있기를 그 깊음으로 또 무언가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고 있다.


불안 가운데서도 한 가지 긍정적인 건
그래도 새로운 질문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물 한 살 때 처음 SIFE(현 Enactus)에서 맞게 된 역할이 HRM이었다. 회사에서 HR 업무를 맡은 것은 5년이지만 나름대로 사람과 조직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게 10년 정도 된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조직에 대해 내가 품었던 질문의 종류와 수준만큼 나 역시 성장하고 조직에도 기여할 수 있었던 같다. 나는 지금의 조직들에서 어떤 질문을 품고 살고 있는지 적어 봤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할지 적어 보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 더 사람과 조직에 대해 좋은 질문을 품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하자고 마음 먹었다.



지금 회사를 다닐 경우에 내가 품을 질문들
 회사를 다니지 않을 경우의 질문들을 생각해 본다.


지금의 회사를 다닐 때,


어떻게 하면 Biz.Transform 시기에 사람들의 불안을 관리할까?(관리할 수 있어 정말?)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에서 리소스를 체계적으로 운용할까?

PMI 이후에 관계사 인원들의 조직문화 통합을 어떻게 할까?

경영진에 조직문화, HR Index 보고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까?



지금의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까?

OO 시장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조직의 문화, 업무 방식(LEAN)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실제로 조직문화를 스타트업에서 다룰 수 있을까?

회사의 조직문화에 맞는 제도는 어떻게 Setting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고민 8주차_내가 하고 싶은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