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화제작이라고 하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 살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에 리디 셀렉트에서 대여를 할 수 있어서, 거의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봤다. 누구는 제목만 좋은 책이라고 하고, 누구는 많이 공감되는 책이었다고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좋았다. 작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이 나인 것처럼 느껴 지기도 했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과거의 나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상담을 받은 건 7년 전이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학교에 있었던 학생생활상담소를 찾았었다. 이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하는 과정은 유쾌하거나 늘 안정감을 주지는 않았다.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앞에서도 완전히 솔직하게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었고,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이 일부러 손을 넣어 음식을 게우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의식은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큰 복숭아 씨가 목에 걸려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처음으로 몇 십년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긍정적인 경험이었고, 나에 대해 잘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예를 들면 왜 내가 스스로 화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지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가족 그리고 어린시절과 연결된 것들도 많았다. 나는 아버지의 모든 부분을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쉽게 화를 내는 다혈질 적인 성격만은 닮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2012년도에 거의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적어 놓은 글이 남아 있었다.
- 선생님 : "OO 씨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화가 나는 거지, 거창한 다른 감정이 아니에요."
일년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결론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 나 : 저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 왜, 저는 제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을까요? 왜, 저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왜,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을 해서 저를 혹사 시켰던 걸까요?'
- 선생님 : "성인 군자도 아니면서, 성인 군자처럼 생각하려고 하지 말아요. 보통 사람이니까 화나고 우울한 게 당연한 건데, 자꾸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생각 하려고 하니까,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는 거에요."
나는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낼 화까지도 온전히 나에게만 돌리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데. 나도 화를 낼 수도 있고, 그 순간은 나쁘게 이야기하고 말 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내가 화가 나고 억울함을 느끼는 그 순간 조차, '다 괜찮다고' '아마, 사정이 있을 거라고' 언제나 좋은 사람인 '척'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정말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걸 꺼야”라고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와 그릇은 가지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내가 화나고 억울한 걸 다 감당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라는 말을 자꾸 속으로 되뇌이는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생소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 나는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다는 친구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친구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 라서, 오히려 겁이 없어지고 도전할 것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일시적인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짐을 느꼈다. 그래서 속으로 체화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지금 이 마음을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이렇게 나마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그렇지만 "OO씨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 말만 들었다면 나는 또, 조금은 슬픈 마음을 안고 나는 또 내 생각의 굴레에서 빠진 채 그대로 오늘 하루를 또 살았을 지도 모른다.
- 선생님 : "그런데, OO씨. OO 씨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괜찮은 사람이에요." "힘내요."
6년 전의 기록을 보면서 여전히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 지금도 문제는 다르지만 여전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생각을 하고, 스스로 짐짓 더 괴로워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라니…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면 적어도 그 때만큼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시 그 굴레에 빠져들고 있으면, 내가 지금 그 상황이구나 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빠져나가려고 하는 노력 정도는 하고 있다. 화가 나거나 응어리가 생기면 글을 쓰든, 대화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풀어내고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시 6년이 지나더라도 나는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조금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6년 후는 지금까지의 6년이 그랬 듯 조금은 덜 고민하고 빨리 그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품어 본 조금 희망적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