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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Sep 30. 2018

죽고 싶지만 떡볶이도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올해 가장 화제작이라고 하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살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에 리디 셀렉트에서 대여를 할 수 있어서거의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봤다누구는 제목만 좋은 책이라고 하고누구는 많이 공감되는 책이었다고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좋았다작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이 나인 것처럼 느껴 지기도 했고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과거의 나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상담을 받은 건 7년 전이었다도저히 혼자서는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학교에 있었던 학생생활상담소를 찾았었다이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이야기를 하는 과정은 유쾌하거나 늘 안정감을 주지는 않았다지나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앞에서도 완전히 솔직하게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었고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이 일부러 손을 넣어 음식을 게우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다의식은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큰 복숭아 씨가 목에 걸려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도 많았다그래도 처음으로 몇 십년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긍정적인 경험이었고나에 대해 잘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았다예를 들면 왜 내가 스스로 화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지에 관한 것들이었는데가족 그리고 어린시절과 연결된 것들도 많았다. 나는 아버지의 모든 부분을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쉽게 화를 내는 다혈질 적인 성격만은 닮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2012년도에 거의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적어 놓은 글이 남아 있었다.



- 선생님 : "OO 씨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그건그냥 화가 나는 거지거창한 다른 감정이 아니에요."

 

  일년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 동안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결론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나는 그 순간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 나 저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저는 제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을까요저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대단한 사람처럼 생각을 해서 저를 혹사 시켰던 걸까요?'

 

- 선생님 : "성인 군자도 아니면서성인 군자처럼 생각하려고 하지 말아요보통 사람이니까 화나고 우울한 게 당연한 건데자꾸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생각 하려고 하니까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는 거에요."

 

  나는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다른 사람에게 낼 화까지도 온전히 나에게만 돌리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데나도 화를 낼 수도 있고그 순간은 나쁘게 이야기하고 말 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내가 화가 나고 억울함을 느끼는 그 순간 조차, '다 괜찮다고' '아마사정이 있을 거라고언제나 좋은 사람인 '하려고 했던 것 같다사실은 정말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걸 꺼야라고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와 그릇은 가지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내가 화나고 억울한 걸 다 감당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라는 말을 자꾸 속으로 되뇌이는데뭔가 설명할 수 없는 생소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나는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다는 친구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친구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 라서오히려 겁이 없어지고 도전할 것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일시적인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짐을 느꼈다그래서 속으로 체화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지금 이 마음을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이렇게 나마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그렇지만 "OO씨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 말만 들었다면 나는 또조금은 슬픈 마음을 안고 나는 또 내 생각의 굴레에서 빠진 채 그대로 오늘 하루를 또 살았을 지도 모른다.

 

- 선생님 : "그런데, OO. OO 씨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괜찮은 사람이에요." "힘내요."

 

  6년 전의 기록을 보면서 여전히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지금도 문제는 다르지만 여전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생각을 하고스스로 짐짓 더 괴로워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라니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면 적어도 그 때만큼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다시 그 굴레에 빠져들고 있으면내가 지금 그 상황이구나 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빠져나가려고 하는 노력 정도는 하고 있다화가 나거나 응어리가 생기면 글을 쓰든대화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풀어내고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다시 6년이 지나더라도 나는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럴 때는 조금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그렇지만 6년 후는 지금까지의 6년이 그랬 듯 조금은 덜 고민하고 빨리 그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오늘 품어 본 조금 희망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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