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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Oct 06. 2018

시간과 공간을 담아 글쓰기

  "토요일 토요일은 글을 써요"라는 글쓰기 모임에 갔다. 혜화역 인근 카페에서 오후 2시에 만나, 3시 반까지 글을 쓰고, 각자 쓴 글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을 정하고 글을 쓰는 게 얼마 만의 일일까.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낯선 일만도 아니지만 정해진 시간까지 글을 쓴다는 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글을 쓴 건 고등학교 때 나간 백일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정까지 마감을 해야 했던 자기소개서를 썼을 때라고 답해야 할까.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유달리 주제도, 평가기준도 없이 뭔가를 쓴다는 기분이 색다르다. 의미 없는 단어와 단어들을 이어보다가 다시 지우게 된다. 틈틈이 멍을 때리고, 틈틈이 시간을 체크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끼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지금이 꽤 괜찮은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읽어볼 사람을 정하고 글을 쓴다는 건 또 얼마 만의 일일까.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거나 브런치에 올리는 것은 그리 낯선 일만도 아니지만, 이 글을 읽어볼 대상을 미리 알고 글을 쓴다는 게 역시 낯설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읽어볼 사람을 정하고 글을 쓴 건 그 사람에게 쓴 편지였다고 말을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것은 작년 겨울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세비야, 그리고 그 직전의 편지는 리스본에서 였던가. 얼마 전 메일을 보다가 그 내용을 다시 읽어본 일이 있었다. 편지에 적혔던 말은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다짐 섞인 말들을 나열했던 것 뿐이었을까. 그때 답장을 받았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때 간절히 받고 싶었던 건 돌아오는 단 몇 줄의 글이었는데, 단 몇 줄의 글을 쓴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매우 큰 고통이기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 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의 문제가 아닌 기술의 문제.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대부분의 하루는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해서 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또 얼마 만의 일일까.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썼던 글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발표해야 했을 때였을까. 3년 전이었던가, 4년전이었던가. 내가 쓴 글이 궁금하다며 연락해 온 누군가와 만난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연락해 준 그 사람의 용기가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내게 글을 통한 소통이란, 아무렇게나 쓴 글에도 한 마디씩 남겨주는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대화의 주고 받음이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익명을 전제로, 아무런 대가없이 나누는 그런 대화들. 답변을 남겨도 그만, 남기지 않아도 그만인 그러한 관계. 약한 의무감이 만들어주는 오히려 강한 친밀감. 그리고 그렇게 휘발되어 버리고 마는 관계들.


  글쓰기 모임에 가입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인데 직접 참석해 본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혼자서만 쓰기에는 이제 의지박약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함께 쓰기에는 여전히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 글은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인데 토요일에 꼭 시간을 두고 쓸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글은 집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인데, 꼭 먼 곳까지 나가서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적어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분당과 서울의 거리 차보다는 더 길었다. 오늘 그 심리적 거리감을 이겨내고 여기에 온 것은 스스로에게 어떠한 변화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적기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애초에 목적과 기준이 없는 글쓰기에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저 오늘 하루는 시간을 정해두고, 공간을 정해두고, 읽을 사람을 정해두고 무언가를 끄적인다는 기분이 새롭고 좋았다. 그렇게 기억되는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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