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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Oct 06. 2018

돌아오는 여름에는

  어느 순간부터 버스를 탈 때 1,250원이 찍히는 걸 확인하고, 새로운 달이 왔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10월의 첫 날이었던 오늘도 버스 카드 태그기의 숫자를 보고 새로운 달이 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갑자기 쌀쌀해진 온도에 새로운 계절 역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아유 오케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마음은 괜찮은지 걱정되어서 보냈다는 메시지. 변화된 계절만큼이나 세심한 안부가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잘 지내고 있는 지 생각해보았다. 생각보다는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생각보다는.


  지난 달 중순에는 천장에서 물이 일주일 정도 샜었다. 물이 새는 곳을 그릇으로 받아내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바닥까지 물이 흥건해서 계속해서 수건으로 물을 훔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천장에서 물이 새다니. 처음 겪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별로 당황이 되지 않았다. 물이 떨어지는 벽을 계속 바라보다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깐 헛웃음을 친 게 다였던 것 같다.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대수롭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이 새는 그런 일들의 연속.


  바닥의 물을 닦으면서 이제는 정말 이사를 가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5월부터 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이사였다. 올해 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이사까지 신경쓰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라고 마음 속으로 변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이사를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서, 주인집에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서 살 동네들과 집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천당 위의 분당이라고 분당도 집 값이 비싸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서울은 서울이었다. 5~6평 짜리 성인 남자 한 몸을 뉘일 원룸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6년 간 열심히 일해 오고, 딱히 낭비한 적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좁은 방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누워있는 이 순간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사를 가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딱히 이사를 가야 할 이유도 찾기가 어려웠었다. 이사를 가도 여전히 원룸인 것은 마찬가지이고 회사가 가까워질 뿐인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그저 변화를 주고 싶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균열을 주고 변화를 주면, 오늘의 삶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곧 열 두번째 이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번 가을은 서울역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건물 밖을 조금만 나오면 남산 타워도 보이는 곳. 지난 가을은 매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양평과 평창에서 지냈었다. 그 기억이 또렷한데 벌써 일 년이나 지나가 버렸다. 작년 이 맘때 쯤, 내가 이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년도 올해와 같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낭만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내일도 내년에도 있을 지, 없을 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정쩡한 후회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월의 "어느새"라는 노래를 자주 듣는다. 듣고 있으면 담배 맛이 나는 것 같은 노래. 작년 스페인 여행에서 지로나를 방문했을 때, 하루 종일 반복했었던 노래. 고민을 가득 안고 방문했던 그 도시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담배 두 개피를 주운 적이 있었다. 평소 담배를 피지 않는 데, 그 날은 담배라도 피우고 싶은 심정이었고, 우연히 내 앞에 라이터가 든 담배갑이 놓여 있었다. 노래를 들었고,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 하루. 어제 우연히 내가 그 날의 기분을 메모해 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어제 내가 누르지도 않았는데 안드로이드는 S 노트의 그 메모를 나에게 띄운걸까. 메모를 읽고 나니, 내가 안고 있었던 고민은 이제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담배를 물고 싶을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고민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모두 결론 지어졌다. 나의 선택과 누군가들의 선택과 상황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 하루. 담배 맛이 나는 것 같은 "어느새"를 계속 듣는 것은 어쩌면 이 한 구절에서 느껴지는 희망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희망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날들로 가득 채워질 것 같은 10월이 무사히 지나가길.


"매일 몇번 씩 무너져내리는. 세상 따위가 내 알 바 아니지. 더 천박해지지 않을 수 있으면. 돌아오는 여름에는."


https://www.youtube.com/watch?v=ng4jUur5a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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