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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Oct 09. 2018

봄여어어어름갈겨어어어울

  우리나라의 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에서 봄여어어어름갈겨어어어울로 변하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사계절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좋은 점이라고 교육 받아왔었다. 그런데 사계절의 존재마저 위협받다니, 이것도 헬조선화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사계절 중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내가 태어난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고, 스무 살 무렵엔 가을이 되어 있었고, 몇 년 전부터는 봄이라고 대답했었다.


  최근에는 계절이 다양하다는 것보다는 계절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 요즘처럼 이대로 가라앉고 싶다고, 하루 하루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싶을 때도, 곧 못 보고야 말 가을 날씨와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분조차 단지 가을 때문일 것이라며 명분을 부여하며, 계절이 바뀌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진다.


  계절은 내가 한없이 가라앉고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곧 겨울은 나로 하여금 겨울 옷이라도 꺼내서 움직이도록 할 것이다. 추운 날이 계속되기 시작하면, 봄만 되면 뭐든지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며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겠지.


  그렇게 봄이 와서 목련이라도 피는 주간이면, 내가 어떤 상황이든 일년 중 가장 행복한 주간이라는 마음을 심어줄 것이다. 겨우내 먼지 쌓인 자전거를 쓸고 닦고 바람을 넣어 달릴 의지도 다시 생기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농구공도 다시 꺼내서 당장이라도 농구 코트로 달려갈 것 같다. 그러다 곧 미세먼지가 불어오면 덥더라도 숨은 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겠지만 7시가 되어도 해가 쨍쨍하고, 반팔을 입으면 더 할 나위 없는 초여름 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더워지는 만큼 냉면과 밀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여름을 견디게 될 것이다. 못 견딜 만큼 무더위가 계속되면 다가오는 여름 휴가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고, 그래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만큼 편한 게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그러다 보면 다시 돌아오는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이대로 가라앉고 싶고,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을 것 같지만 계절의 변화가 적어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를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계절로 변화의 흐름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이, 내일은 오늘과 반드시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 하루를 아주 약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계절이 있는 곳에 산다. 그런데 사계절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사계절마저 없어진다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없는 곳이 된다면 내가 사는 이 곳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더 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이 곳에서 머무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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