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06. 봄 맞을 준비

by 이단단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듯 감정을 정돈하는 일을 한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행위는 일기를 쓰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좋아하는 옷을 고르고 다림질을 하듯 적어 내려갔던 글자를 되짚어 본다.


불안이 심해 약을 먹으면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일기 쓰기였다. 특히 큰 일을 앞두고 생각이 많을 땐 작은 일부터 해보라는 의사의 조언진료실을 나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기장으로 쓸만한 기록장을 사는 일이었다. 감정도 고르고 골라 필요한 감정만 체에 걸러 내리고 싶었다. 이만하면 되겠다 싶은 기록장을 사고, 좁은 방이지만 창문이 정가운데에 나 있어서 아침이 되면 햇살아래에서 빛을 듬뿍 받으며 일기를 쓴다. 맑은 날에는 햇살 아래에서, 비가 오면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회색빛 대지와 타닥타닥 알갱이가 튀는 것 같은 나무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새하얀 설원을 바로 등뒤에 대고 사락사락내리는 눈 아래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하나씩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노트에 까만 글자가 가득 채워지고, 맑은 날에 거기에 햇살까지 내려앉으면 더없는 행복이 된다.

아침에는 주로 전날 충분히 걷다가 멈추어 쓴 기록들이 종이를 부풀게 한다. 일하며 걸으며 대화하며 겪어낸 일들을 쭈욱 쓰고 그것을 돌아보기도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러면 충만한 마음으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까만 글을 컵에다 내린 듯한 커피를 보고 웃는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정든 사람과의 따뜻한 이별에 대해서 썼다. 슬쩍 돌아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알뜰살뜰 관리해 주신 꽃과 나무들과 물품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한동안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출발을 위한 소식이었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 한쪽에서는 끝난 거니까.

곳곳에 닿아있던 그분의 손길을 추억하며 계단참을 올라가 보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다.

글을 다 쓰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는다. 크던 작던 이별하는 일이 있는 날에는 아침 일기를 오래 쓴다

일기를 쓰다가 빛이 든다. 그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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