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성과 감성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펼쳤다. 늘 차분하고 이성적인 맏언니 ‘엘리너’와 뜨겁고 열정적인 동생 ‘메리앤’이 그려내는 인생과 사랑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고전을 원래 잘 읽지 못했는데 페스트가 가져다준 성취가 두 번째 고전 읽기 도전으로 바뀌었다.
주인공들을 보며 느낀 건 이성과 감성이 무 자르듯 나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 속 기사처럼 아예 반으로 나눠진다면 모를까, (선과 악의 개념이지만) 제인 오스틴의 글을 보며 사람 안에 있는 감정은 엘리너와(이성) 메리엔(감성)으로 나눠지지 않고 공존하며 늘 다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이나 글을 쓸 때, 사회의 구조와 논리를 따지는 순간에는 엘리너가 되었다가도 가족이나 사람냄새나는 현장, 서점, 좋아하는 공간, 그것을 만든 사람을 보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메리앤이 되기도 한다.
오후는 온전히 메리앤이 되는 시간이었다. 좋은 책을 마주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문장 속에 파묻혔다. 오랜 팬이었던 정지우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속 문장을 다시 읽었는데, 그의 글은 날카로운 메스처럼 내 안의 편견들을 헤집어 놓았다. “독서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될 때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그 말 앞에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쓸모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해 왔는지 깨닫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계속 커피를 마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억눌러왔던 과거의 기억들이 문장을 타고 올라온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몸을 뒤척이다 작가님께 질문하려고 붙여둔 ‘포스트잇’을 잃어버렸다. 완벽하게 정돈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엘리너’는 절망했고, 허탈함 속에서 일기를 쓰는 순간 튀어나오는 내 언어들은 한낱 저급한 배설물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저급하다고 밀어냈던 그 ‘날것의 감정’이야말로 나를 가장 정직하게 대변하는 목소리였다. 통계 수치나 세련된 용어로 포장되지 않았을지언정, 고전을 읽으며 내 안의 편견을 발견하고 사색에 잠겼던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실했다. 엘리너의 절제가 정답인 줄 알았으나, 때로는 메리앤의 격정적인 마음이 나를 더 깊은 사유의 바다로 데려가기도 한다는 것을 오늘 두 권의 책으로 배웠다.
결국 나는 오늘 잃어버린 포스트잇을 다시 찾지 않기로 했다. 내일 북토크 현장에서 내가 마주할 것은 정해진 질문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 종일 정신 못 차리며 앓았던 이 열병 같은 사색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멈추지 않는 것. 걷다가 멈추어 내가 속한 사회와 구조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한낱 개인이자 사회에 속한 사회인인 내가 이성과 감성을 넘나들며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