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2

02.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

by 이단단

요즘 들어 부쩍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줄었다. 출판하겠다는 당찬 포부는 ‘아마추어가 무슨…’이라는 자기 검열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긴다.

한 달 내내 영하의 추위를 마주하며 깎여 나간 체력은 창작의 의지마저 갉아먹는 듯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프로들의 매끈한 사진과 깊이 있는 문장들 사이에서 나의 기록은 한없이 투박하고 초라해 보였다. 나는 그 화려한 성취들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고 몸을 떨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은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뿌리를 더듬어 본다. 아마추어는 라틴어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했다. 그 뜻은 의외로 단순하고도 강렬하다.



‘사랑하는 사람.’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이나 대상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만의 노동을,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 안팎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굳이 나를 멈춰 세우는 찰나의 풍경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비록 사진이 조금 흔들렸을지라도, 내 문장이 한강이나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수아즈 사강처럼 유려하지 못할지라도, 그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지독한 진심이 녹아 있다.


한 달 전, 서울미술관에서 본 카와시마 코토리(Kawashima Kotori)의 사진들이 떠오른다. ‘미라이 짱’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수십 년간 한 인물을 쫓으며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내는 작가다. 그의 사진에는 대단한 기교가 없었다. 요즘 사진처럼 매끈하지도 않았고, 피사체들은 온몸에 흙을 묻히거나 낙엽 위를 뒹굴기도 했다. 필름 특유의 낡은 질감 탓에 자칫 촌스러워 보일 만큼 잔잔한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전시를 보는 내내 밀려온 감동의 크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의 전시 사진 아래 빼곡히 적혀있던 전시글 하나하나를 보면 사진에 대한, 인물에 대한 그의 애정이 듬뿍듬뿍 솟아나는 게 보였다. 그는 수년간 오직 애정하는 대상만을 쫓았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아니었다면 미처 보지 못했을 사물의 생김새나, 인물의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상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작가, 나는 그의 사진 앞에서 한동안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힘을 뺀 듯 무심한 듯,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순간과 그날의 공기를 담아 둔다는 그의 사진 철학을 만나며, 나는 사진이든 글이든, 늘 프로의 그것처럼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마추어는 서툰 게 당연하니까. 대신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기꺼이 멈춰 서고, 기록하고, 다시 읽을 것이다. 아마추어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전시회나 출판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순간들을 정직하게 내보이고 사람들과 단란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소박한 자리를 꿈꿔본다.


오늘 밤, 서툰 실력에 좌절한 이들이 있다면 잠자리에 들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여주면 좋겠다.


"너는 충분히 훌륭한 아마토르야. 사랑하는 마음을 멈추지 않는 한, 너의 기록은 이미 예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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