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2

12. 일상의 부스러기를 수거하는 시간

by 이단단
괴로운 일일수록 기쁜 날 쓱 해버리는 게 낫다.
이슬아 _<심신단련>

본격적으로 연휴를 보내기 전, 무겁게 발을 짓누르고 있던 집안일들을 하나씩 해치웠다. 빨래를 돌렸다.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아서 수면양말도 전부 다 벗고 빨아버렸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현관 한구석을 차지하던 쓰레기 통을 밖으로 밀어냈다. 화장실 바닥엔 세척액을 듬뿍 뿌려두고 나머지 할 일을 하며 땟물이 빠지는 동안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솔로 쓱싹쓱싹. 줄 지어 까만곰팡이들이 없어질 때까지 완벽히 지워간다. 마지막에는 찬물로 거품을 씻어내며 묵은 기분까지 함께 흘려보냈다.


나의 몸도 가지런히 정돈한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씻고 나서 ​비어있던 속을 따뜻한 밥으로 채우고 나니, 비로소 주변의 고요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 번씩 일상에서 하던 것들을 제외하고 집 안의 모든 것을 솎아낼 때 나도 집도 한결 기뻐하는 것만 같다.


​작은 초 하나를 켰다. 흔들리는 불꽃을 가만히 응시하며 오늘 내가 치워낸 것들을 생각한다. 그것들은 어쩌면 내 삶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겨진 파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을 때는 짐이었지만, 제자리를 찾아 비워내고 나니 그제야 비어있는 공간의 안온함이 찾아온다.


​설이 지나면 다시 정갈한 문장을 줍는 마음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한국 사람이지만 제일 못하는 말이 한국말이 아닐까 싶어서. 모국어라는 이유로, 일상어라고 생각한 뒤로부터 안일해진 것 아닐까 싶어서다. 다시 단어를 매만지고 조합하고 배워서 결실도 맺고 싶다. 그리고 일상의 파편을 정리하듯, 내가 쓸 글의 파편들도 조금 더 세밀하게 다듬고 싶기 때문이다.
​촛불의 온기가 방 안을 채우는 이 고요한 오후. 드디어 나의 하루가 평온한 궤도에 올랐다. 괴로운 일은 기쁘고 따뜻한 날에 쓱 해치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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