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다행히 걸었다.
2월은 유독 잔인하다. 달력의 숫자는 가장 적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무게는 일 년 중 가장 무겁다. 공기가 조금만 따스해져도 싱숭생숭해지곤 한다. 외출 전이면 가벼운 떨림을 내뱉곤 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무기력이라는 늪에 빠져 있었다. "너 이러면 안 돼"라고 꾸짖는 내면의 목소리를 이불 삼아 덮고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찾지 못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누워버렸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나를 꾸짖던 목소리 대신 신발끈을 묶는 손길을 택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광화문까지. 결코 짧지 않은 그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궁궐 담장을 따라 걷는 길 위로 2월의 햇살이 내려앉았다. 병오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듯한 그 온기는 어제의 무력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정했다. 걷는 동안 내 몸의 떨림은 리드미컬 하게 변했고,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의 파편들은 길가의 먼지처럼 흩어졌다.
먼저 가보기로 했던 서점에는 내가 찾던 책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역시 되는 일이 없네"라며 좌절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금 더 걷지 뭐"라는 단순한 마음이 나를 광화문까지 이끌었다. 소로가 숲 속에서 찾으려 했던 그 단순한 삶의 진리가, 광화문까지 걷는 나의 1시간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 광화문에서 원하던 책을 품에 안았다. 이 책은 단순히 종이 뭉치가 아니라, 무기력을 뚫고 걸어온 나의 작은 성취의 파편이다.
돌아오는 길, 이제야 깨닫는다. 2월은 무너지는 달이 아니라, 무너진 것들 사이에서 쓸만한 조각들을 골라내는 달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길 위에서 나만의 파편을 하나 더 주워 담았다. 조금씩. 조금씩.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