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2

23. 다시 연결된 세계

by 이단단

창밖의 나무는 정직하게 비어 있었다. 잎사귀 하나 없이 마른 가지들을 허공에 뻗은 채, 돌담 너머의 겨울 하늘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모습. 그 메마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꼭 그 나무처럼 앙상하게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종종 모든 것이 귀찮았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라 머리끝까지 잠식해 버리던 오후.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던 가느다란 유선 이어폰마저 사라졌을 때, 나는 정말로 어이없음과 동시에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이 사라지는 행위 이상의 상실감을 준다. 내가 쥐고 있던 통제권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 그 무기력함 속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선 뭉치를 발견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어폰이었다.


​꼬여있던 하얀 선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풀어본다. 매듭이 풀릴 때마다 꽉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씩 트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는 순간, 고요했던 방 안으로 다시 나에게 안정감을 주던 소리들이 흘러들어왔다. 재즈의 거장들이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선율들이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어폰을 되찾은 건 단순히 소리를 되찾은 게 아니었다. 다시 무언가를 기록하고, 다시 밖을 내다볼 용기를 되찾은 것이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의 저 나무도 사실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봄이라는 다음 파편을 줍기 위해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일 테다. 나 역시 오늘, 잃어버렸던 나만의 작은 조각 하나를 주워 올렸다.

작가의 이전글걷다가 멈추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