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월 마무리.
흰 우유 위로 에스프레소가 섞여 들어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액체가 만나 고소한 라테가 되듯, 나의 오늘 하루도 전혀 다른 질감의 파편들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양귀자의 『모순』을 마침내 완독 했다. 안진진의 생을 마지막 장까지 함께 헤엄치고 난 뒤 찾아온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불투명함을 긍정하게 되는 이상한 안도감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쏟아낸 말들은 카페 공기 중에 흩어졌고, 나는 그중 잊고 싶지 않은 단어들을 골라내어 문장으로 기록했다. 작가로서의 자아는 그렇게 조금씩 살을 찌워간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자 현실은 차가운 형법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법인의 범죄능력'이라니. 사람이 아닌 조직이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그 딱딱한 논쟁 앞에서, 조금 전까지 안진진의 감정에 이입하던 뇌는 길을 잃었다. 이미 수없이 반복했던 공무원 형법 교재의 문장들인데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낯설고 추상적인지.
각 연습문제의 답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삶도 하나의 법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주운 수많은 파편과 습관, 감정들이 모여 나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가 결국 나라는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실체가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이 혼란과 피로도 결국 '나'라는 실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내일은 3월 1일, 방송대 도서관은 문을 닫고 세상은 잠시 쉬어가는 공휴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 일찍 모바일 학생증을 신청하며 새로운 항해를 준비할 예정.
라테는 이미 바닥을 보였고, 형법 강의는 여전히 아득하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나는 책 한 권을 끝냈고, 한 편의 글을 썼으며, 이해되지 않는 법문에 질문을 던졌다. 그거면 충분한 하루다. 팔목에 남은 향기를 맡으며, 이제는 안진진이 아닌 나 자신의 꿈속으로 침잠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