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슬히.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골목 끝에서 발길이 멈췄다. 주황빛 물감이 번지듯 하늘이 제 몸을 바꾸는 시간. 그 아래,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 온몸을 드러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겨울을 견디느라 짐을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작고 야무진 새둥지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누군가 공들여지어 올린 저 보금자리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제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저 작은 둥지를 짓기 위해 새는 얼마나 많은 마른 파편을 물어 날랐을까.
낮게 깔린 기와지붕의 부드러운 선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무심한 전선들. 그리고 불 켜진 창문 너머로 엿보이는 가게상인의 평범한 일상. 이 모든 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담백한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앙상한 가지 끝의 둥지를 보며, 나 역시 내 마음의 둥지를 다시 보수한다. 세상의 무례한 소음과 불확실한 미래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지켜내고 싶은 나만의 고요함.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평범함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 나는 이 불안한 파편들을 문장으로 줍는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사진 속 풍경처럼 담담하게 걷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