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불길로 제련한 칼이 되고 싶다
요즘의 나는 자주 뜨겁고, 자주 차갑다. 9년 동안 병동이라는 좁고 치열한 세계에서 타인의 통증을 먼저 살피던 '이성'의 자리에, 이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화가 수시로 차오른다. 낯선 냉기 속에서 마주한 무능한 권위와 무례한 언어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들먹거리며 현장을 배회하는 한 남자의 지락(至樂) 없는 소음 앞에서, 내 안의 온도는 맥락 없이 솟구쳤다.
수많은 상황을 마주하면서 이어지는 내내 귀를 파고드는 그날 선 목소리들. 예전 같으면 '사회적 가면'을 쓰고 유연하게 넘겼을 일들이, 이제는 송곳처럼 심장을 찌른다. 참다못해 차갑고 명확한 어조로 누군가에게 팩트를 던졌을 때, 사방을 메우던 소란이 일순간 멎었다.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나는 승리감보다 피로감을 먼저 느꼈다. 내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고요를 갈망하고 있었다.
퇴근길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자문한다. '나는 왜 이렇게 툭하면 화가 날까.' 하지만 이 화는 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신호라는 것을 안다. 공부하고 읽으며 쌓아온 나의 세계가, 현장의 무질서한 에너지와 충돌하며 내는 불협화음. 오랫동안 "네, 알겠습니다" 뒤에 숨겨두었던 '나'라는 존재가 이제야 제 목소리를 내며 지르는 건강한 비명인 것이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여전히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 뜨거운 불길을 잠재우고, 다시 나만의 고요한 숲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주말에는 이 소란을 견뎌낸 전리품으로 머리칼을 선명하게 물들이고, 곧 있을 면접을 위한 단정한 재킷을 고를 것이다. 무능한 소음들은 고속도로 위에 버려두고, 나는 다시 펜을 든다. 들끓는 화를 문장으로 정제하는 순간, 비로소 나의 세계는 다시 고요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