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예전의 맛이 날까?
아무것도 할 일 없는 평일 아침, 그리고 휴무.
아침 아홉 시까지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주방에 간다. 그 시간이면 엄마는 훨씬 전에 출근했으므로 이제 집 안엔 오로지 나 혼자밖에 없다.
혼자가 되면 모든 게 별로인데 또 모든 게 재밌다. 딱 하나 좋은 것. 그렇지만 그게 전부인 것. 엄마가 싫어하는 짓을 죄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빌리 조엘의 바이닐을 틀어놓고 흥얼거린다. 그의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The Stranger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인센스 스틱에 불을 옮긴다. 사그라드는 향 앞에 앉아 일어나자마자 커피 머신에서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앉은 상태에서 그대로 명상을 하는 날도 있고, 베란다에 심어놓은 식물을 보고 가만히 노래를 듣기만 하는 날도 있다. 명확한 목표가 없는 아침이다.
최대한 그 시간만큼은 아무 의미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침부터 의미로 가득 차 버리게 되면 하루가 꽤 의미는 있겠으나 무게는 너무 무거워지고 내가 들기엔 버거울 때도 있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날이 있고 오늘처럼 그렇지 않은 날도 있겠다. 그냥 쉬는 날엔 본능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차피 집에만 있을 것인데 무엇을 걱정할까.
생각 아닌 생각을 하는 사이 주방으로 향한다. 배가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다. 그런데 나는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배가 고플까.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밥 솥단지와 국과 반찬들을 번갈아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모두 엄마가 라면 좀 그만 먹고 밥을 먹으라고 만들어 놓고 간 흔적들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것들을 원하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결국 냉장고 앞을 서성대다가 전날 남겨놓은 치킨 몇 조각을 먹고 있다. 전자레인지에 데울까 하다가 그냥 놔두고 무심히 뼈를 발라가며 오물오물 먹고 있다. 찬 부분이 입술에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것 같으면서도 전자레인지에 지금 돌려봤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고 예전과 같은 맛이 날까? 무심코 삐딱해진다.
알람이 울리듯 정확히 오전 열한 시에 울리는 인스타그램 디엠창을 확인한다. 모두 나를 찾는 그 사람의 메시지. 몇 달 전 헤어진 그 사람. 나는 그의 메시지를 식은 음식 보듯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너와 나의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관계를 예전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자레인지에 우리 사랑을 다시 돌린다고 해도 결코 예전과 같은 온기와 맛은 느껴지자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