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 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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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유독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있다. 아무리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도, 몸의 중심을 다잡아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날. 휴일에 내 방에 누워 창 밖으로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마주 보다가 ‘오늘은 H에게 카톡이 오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H’는 나에게 ‘오늘 바람이 불어서 너무 좋다.’며 아침 댓바람부터 카톡을 몇십 통씩 보냈다. 이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를 나에게 자세하게 말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나도 따로 물어본 적도 없었다. 왠지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은 그런 이유로, 반은 조금 더 상상하기 위해서 말을 아껴두었다.




그녀를 보면 떠오르는 첫 모습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바람을 맞고 서 있다가 모든 것을 털어내듯 시원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었다.


바람에 열매가 터지는 것을 본다면 바로 그런 느낌이 들까? (이원하 시인이 이야기한 ‘수국의 즙 같은.‘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녀의 웃음에는 어떤 열매에서 나온 건강한 즙 같은 것이 흘렀고, 그 미소에 홀린 듯이 나는 그녀의 인생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가까이 들어가 볼수록 그녀가 맞는 삶의 거센 바람도 같이 맞는 일이 많았는데, 그녀가 삶의 바람에도 기꺼이 몸을 맞서는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세상에는 바람을 등지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에게 거세게 부는 바람을 웃는 얼굴로 기꺼이 마주하려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느 쪽인가. 당연히 등지고 피하는 쪽이 아닌가. 구차한 말이나 번드르르 적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눈앞을 가로막던 거센 바람에 말을 내뱉던 입을 제일 먼저 가리고 얼굴마저 숨기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예기치 않은 바람이 거세게 내 앞을 가로막을 때면 언제나 바람을 맞으며 웃음 짓던 그날의 그녀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금세 그녀처럼 바람을 기꺼이 맞고 싶은 용기가 바로 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좋아지도록 흔들 개비를 방 창문에 달았다. 그렇게라도 바람과 바람이 몰고 오는 소리와 친해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