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의 '다름'

'이성과 감성'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by 이상한 나라의 옥

이 사회는 정신력(멘탈)이 강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 말은 우리가 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데 있어 강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을수록 유리함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스스로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웬만한 일에 정신력이 무너져서도, 무너진 정신력을 쉽게 내보여서도 안 된다고 다그친다. 그렇다면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 누구 말마따나 항상 행복한 것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하여 감정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것은 아니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분 상태를 경험한다. 단지 그들은 힘든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 흐트러진 마음을 이내 추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람들이 힘든 상황에 놓이면 대개는 인간적인 감정들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어렵거나 불가하다. 정신력은 특히 이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타고난 감성 탓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정으로 인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정신력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감정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힘이기 때문이다. 강한 정신력은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오래 휩쓸리거나 갇혀있지 않고, 재빨리 이성의 끈을 스스로의 정신에 단단히 쪼여 맨 후 폭풍의 눈을 찾고자 노력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폭풍 속에서 평온함을 찾고,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으며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신력은 강할수록 분명 사회라는 정글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인간 성질의 좋고 나쁨을 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진 못한다. 따라서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강도의 정신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정신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력의 강도에 따라 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식과 극복하는 기간이 다를 수 있지만, 강도에 상관없이 인간은 모두 감정적 좌절을 경험할 수 있고 흔들릴 수 있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 모두는 지니고 있고 이는 자연스러운 것임이 틀림없다. 각자 자신의 정신력과 그에 따른 자신만의 방법으로 폭풍의 눈을 찾아 조금씩 나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는 감정적 아픔을 오래 느껴야만 잡고 있는 이성의 끈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회가 정신력 사용 매뉴얼과 극복 시기를 정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강한 정신력은 종종 인간이 스스로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욕구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더 선호되어지곤 한다. 하지만 정신력이 강한 사람 곁에 있다고 하여 감정적 영향의 정도가 약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소설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반면 동생 메리앤은 상대적으로 언니에 비해 약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다. 그렇다고 엘리너가 동생보다 더 좋은 성품을 지녔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의 정신력 강도는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극복 방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각자 자신들의 힘듦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적 영향을 끼쳤는데, 엘리너가 메리앤에 비해 덜 끼쳤다고 볼 수도 없다. 메리앤의 극복 과정과 엘리너의 그것이 ‘다른’ 까닭에 주변인들이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 ‘달랐을’ 뿐이었다.


소설에선 둘 다 약한 정신력을 감추고 타고난 정신력을 더 강화시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요받지 않고, 각자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고, 숙고한 후 정신력 강화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도 무조건적으로 강한 정신력을 갖출 것을 기대하기보다 개인이 자신의 정신력 활용법을 마음 편하게 정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정신력 강도 역시 다양함을 인정할 수 있는 넓고 깊은 사회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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