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무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by 이상한 나라의 옥


‘야무짐. 말로 생각을 잘 표현함. 책임감이 강함. 사교적임. 리더십이 강함’



어릴 적 가정통신문에 자주 등장한 나를 묘사한 단어들이다. 동시에 내가 타인으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이기도 하다. 맡은 일이 있으면 완벽에 가깝게 수행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주도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항상 자신감이 넘쳤으며, 그런 특성들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내 말과 행동들에서 나의 강함을 느끼곤 했다. 성장할수록 가벼움에 수반하는 빈틈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게 됐고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공개할 수 있는 빈틈의 크기는 사교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으로 줄이게 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에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의 강함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상황들이 내 삶의 순간들로 엮였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상황들과 상관없이 내 삶에 나란 존재의 강함과 무거움에 대한 믿음이라는 무늬를 새겼다. 그 무늬를 입은 나와 내 삶은 한없이 진중하고 무겁게 느껴졌고 만족스러웠다. 가벼움은 내가 사회에서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적인 특성 정도로 치부했다. 무거운 내가 가벼움으로 무장한 채 나섰을 때 그 가벼움 속에서 내 진정한 무게를 알아봐 주는 사람과의 관계에 가치를 더 두기도 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내 삶은 수많은 <그래야만 한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공부를 해야 했고, ‘좋은’ 대학에 가야 했으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야만 하는 ‘좋은’ 학과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를 벗어나기 위해 저항했으며 소명이라고 부여받았던 모든 것을 털어내고 나의 욕망과 의지에 따른 삶을 살고자 했다.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찾고 싶었고 그에 따른 삶만이 똑같이 흘러가는 모든 인간의 삶 속에서 나만의 결과 색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한 무거운 삶이었다. <그래야만 한다!>에서 이탈해 나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데서 오는 희열과 만족감은 니체의 영원회귀에 따라 삶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내 삶을 언제든 즐겁게 다시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컸다.



무거움으로 꽉 채운 자아와 삶. 이대로 삶의 결을 형성해가고 있다고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믿음은 성인이 되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외부의 <그래야만 한다!>의 구속이 희미해졌을 때 가볍게 깨어졌다. 이전 구속들의 부재 속에서 내가 그동안 채웠다 믿은 무거움은 그 믿음의 무게만 남긴 채 흩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타인 앞에서 오로지 관계를 위해 무장하는 것이라 믿었던 가벼움이 내 존재의 본질임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체 그럼 드러낼 듯 말 듯하며 그토록 내보이고 싶었던 내 무거움은 무어란 말인가. 또 외부의 <그래야만 한다!>가 존재하지 않을 때 느껴지지 않는 내 삶의 무게는 어떻게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길고 긴 방황의 끝에 나는 내가 삶에 새긴 믿음의 무늬는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믿고자 한 나의 특성들은 타고난 당연한 것들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된 서로 다른 우연들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것들에 불과했다. 인간이란 존재의 가벼움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에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를 수없이 만들어내고 내 존재가 무거워질 수 있는 의미들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로 무장한 강한 자아로 외부적 <그래야만 한다!>에 맞서면서 삶에 의미를 만들고 무거움을 더하고 있다 믿었다. 하지만 가벼움을 배제한 내 존재의 무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오히려 존재가 무거움을 지닐 수 없게 했다. 그 믿음이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는 외면한 채 외부적 <그래야만 한다!>에만 저항해온 스스로를 합리화한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내 삶의 결은 어딘가 거칠고 균일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지난 한 직면의 과정을 통해 존재의 가벼움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며 이제는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 중이다. 여전히 내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불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 있기에 무거움이 있을 수 있고, 가벼워질 수 있음이 도리어 무거움을 증명하는 것임을 안다.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그 가벼움을 어떻게 참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 이는 내가 나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까지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삶은 존재의 가벼움을 마주하고 대항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무게는 더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내보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느끼려 애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정한 무거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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